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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개성고씨 집성촌 왕태(旺泰)골
메일신문 <고택은 살아 있다> (3)
등록날짜 [ 2012-01-18 15:56:04 ]
[古宅은 살아있다] <3> 문경 개성고씨 집성촌 왕태(旺泰)골


 
문경에서 600여 년을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고 있는 개성고씨(開城高氏)는 총 900여 가구 3천여 명에 달한다. 지금은 옛 세거 형태가 많이 지워졌으나, 아직도 곳곳에 그들의 흔적이 고택(古宅)에 묻어 있다.

문경지역에서 '왕태 고씨'로 통하는 이들은 문경 동로면 황장산에서 발원해 영순면에서 받아들인 뒤 예천 용궁면 남쪽, 풍양면 삼강리에서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금천(錦川)을 따라 산양면, 영순면 열두 골에 터를 잡고, 4개 파의 집성촌을 이루며 문경의 선비문화를 꽃피워왔다.

집성촌은 문경시청에서 차량으로 10분 거리인 산양면 녹문리부터 영순면 왕태1,2,3리, 산양면 신전리, 송죽리, 평지리, 흥덕동 예골에 이른다.

“5, 6년 전만 해도 고택이 집성촌에 가득했는데, 지금은 10여 곳만 남고 거의 사라졌다”며 신전리 마을회관에 모인 어르신들이 아쉬워한다. “지금같이 고택이 소중하다는 걸 알았으면 잘 관리했을 건데, 뒷집 종택(宗宅)은 안동의 어떤 사람들이 와서 기둥과 서까래를 다 가져갔다”고 증언했다.

편리한 것을 쫓는 세태 탓일까? 그나마 문경의 개성고씨들이 전통 고택의 모습을 이나마 간직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전통을 소중히 여기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 송죽리 덕암마을, 고재용 종택

(‘고택과 경운기’ 문경 개성고씨들의 맏집인 산양면 송죽리 덕암마을 고재용 종택. 1933년에 지은 근대 건축물로 지난해 경상북도 문화재로 지정됐으며 현재는 관리인이 사랑채에 거주하며 고택을 지키고 있다. 문경에는 600여 년을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는 개성고씨(開城高氏)는 총 900여 가구 3천여 명에 달한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문경 개성고씨들의 맏집인 산양면 송죽리 덕암마을에 고재용 종택이 단아하게 자리 잡고 있다. 개성고씨의 문경 입향조로 임진왜란 전 예문관 직제학을 지낸 퇴산(退山) 사원(士原)이 터를 잡았던 산자락에 있는 이 고택은 솔바람 소리가 들려오고, 다른 집들이 붙어 있어도 전혀 이어지지 않은 듯 고고하다.

이 고택은 치당공(痴堂公) 고완(高浣`1863~1953)과 그의 아들 고석림(高碩林)이 1932년 착공해 1933년에 완공했다고 한다. 당시 와공 안만수, 도목수 장재덕이 건축에 참여한 것으로 전해지며, 건축에 사용된 나무는 황장목으로 유명한 동로면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지난해 6월 2일 경상북도 문화재 589호로 지정됐다.

산자락 끝을 남북으로 길게 닦은 터에 대문채와 사랑채가 앞서 있고, 안채가 남향한 사랑채와 직교하면서 동향을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랑채와 안채는 직렬이나 병렬로 배치되는 것과 다른 모습이다. 안채는 정면 7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홑처마이고, 좌익랑의 고방 겸 하인들의 거처는 정면 6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우익랑의 대문채는 정면 3칸, 측면 2칸이다.

이 고택은 2006년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33호 자수장(刺繡匠)으로 지정된 김시인(金時仁) 씨의 큰집이기도 하다.

◆ 녹문리 고병숙 고택
(녹문리 고병숙 고택(고병익 서울대총장 생가) 사랑채인 녹파정사 의 우물정(井)자형 천장. 이는 왕실 천장에만 사용하는 치장으로 알려져 있다.)

금천 중류쯤 녹문리(鹿門里)가 있다. 이곳에는 고병익 전 서울대 총장의 생가이자, 형 고병숙의 고택이 있다. 1999년 8월 9일 등록문화재 제365호로 지정됐다. 19세기 초엽 이곳에 정착한 고몽익(高夢翊 1780~1851)이 1828년(순조 28년)에 건립했다고 한다. 1930년대 말 훼철(毁撤)될 형편에까지 이르렀으나, 고병숙 씨가 우여곡절 끝에 붙잡아 보존해 왔다고 한다.

현재 안채, 사랑채, 대문채만 남아있다. 그전에는 아래채에 중문간, 마구간, 방앗간, 고방이 있었다고 한다. 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마당 건너편에 'ㅡ'자형 사랑채가 있고, 그 뒤편에 'ㅗ' 자형의 안채가 있다. 사랑채와 안채가 튼 ㄷ자형을 이룬 것이다. 그러나 원래는 사랑채 우측 뒤쪽에 중문간을 둔 'ㅡ'자형 아래채와 함께 튼 'ㅁ'자형을 구성했던 고택이다. 1980년대 후반 아래채가 철거되었으며, 안마당에는 건립 당시에 판 우물과 장독대가 남아 있다.

사랑채 녹파정사에는 특이한 건축 치장이 있었다. 사랑방 천장에 나무로 우물정(井)자형 치장을 해 두었는데, 이는 왕실 천장에만 사용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 마루 보에는 잔치나 큰 모임이 있을 때 사용하는 차양(遮陽) 거치대 걸이가 앉혀 있어서 이 집의 위세를 알 수 있었다.

이 마을의 지명(地名)이 개성고씨에서 나왔다고 한다. 1880년대 진사 고성겸(高聖謙)의 호가 녹리(鹿里)였는데, 그는 많은 제자를 양성했다고 한다. 그 제자들이 선생이 사는 마을을 녹문리라 이름하여 마을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그 흔적으로 녹리정(鹿里亭)이 있고, 고성겸의 아우 북파(北坡) 고문겸(高文謙)이 지은 북파정(北坡亭)이 고병숙 고택과 어우러져 있다.

고병숙의 동생 고병익(高柄翊 1923~2004) 전 서울대 총장은 이곳 집성촌의 인물 중 단연 돋보인다. 조선시대 문과에 급제한 월봉(月峰) 인계(仁繼) 선생의 후손으로, 고성겸의 증손인 고병익은 우리나라 동양사학의 태두(泰斗)다. 1979년 서울대 총장, 1980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 문화재위원장을 지내면서 '동아교섭사의 연구' '아시아역사상' '동아시아의 전통과 변용' 등의 저서를 내고 수필집 '선비와 지식인' '세월과 세대'도 냈다. 이 마을에는 또 고병달 고택, 참봉댁 고택이 있다.

◆ 신전리 취규재

덕암마을에서 한 굽이를 돌아가면 신전리다. 여기에는 고시부 고택이 있다. 이 마을은 현재 개성고씨 후손들이 가장 번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한말 항일의병대장 운강 이강년의 좌종사(坐從史)로 창의했던 고윤환(高允桓`1845~1915), 총사관이었던 고유훈(高有勳`1870~1941), 조선체육회 제2대 회장을 지내고 고려대 전신인 보성전문학교를 세워 초대교장을 역임한 고원훈(高元勳`1881~납북), 철도청 공무원을 하다가 국회의원을 지낸 고우진(高禹鎭`1921~1983) 씨 등이 모두 이 마을 출신들이다.

이 마을은 아직도 공동체가 살아 숨 쉬고 있다. 1989년부터 마을 효자, 효부를 선정해 시상하고, 학생들에게는 장학금을 주고 있다. 고방훈(64) 씨는 어머니 한호댁의 유지를 받들어 4천 평의 논에서 나는 쌀 20가마니로 효행상을 주고 있고, 고성욱(63`코콤 대표) 씨는 어머니 우망댁의 뜻에 따라 4천 평의 논에서 나는 쌀 20가마니로 장학금을 주고 있다.

마을회관 뒤에 있는 이 마을 입향조 고세충(高世忠)의 강마소(講磨所) 취규재(聚奎齋) 고택이 특이하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작은 집이지만, ㄷ자로 강학공간이 있고, 그 안에 ㅁ자의 방이 마련돼 있다.

◆ 예골 고영조 고택
 
(흥덕동 예골에 위치한 태촌 고상안(高尙顔)선생 후손들이 건축한 만산재(晩山齋). 방으로 개조된 가운데 마루를 원상복구 후에 문화재 등록을 추진 중이다)
 
흥덕동 예골에는 농서(農書) '농가월령'(農家月令)의 저자 태촌(泰村) 고상안(高尙顔`1853~1623) 선생의 후손들이 세거하는데, 그곳에 태촌의 후손들이 건축한 고택 만산재(晩山齋)가 있다.

지금 이 고택엔 그의 13대손인 고영조(70. 高榮照. 전 문경시의회 의장) 씨가 살고 있는데, 이 만산재는 220년 전에 그의 7대조 고이건(高以建) 선생이 건축을 하였고, 그의 증조부 만산 고언상(高彦相) 진사(進士)가 당호를 지었다고 한다.

그의 13대조 태촌 고상안은 임진왜란 전에 출생해 문과에 급제하였고, 이때 이순신 장군이 무과에 급제를 했다. 둘은 과거 동기생인 것이다. 그런 인연으로 수차례 이순신과 교류가 있었는데, 그의 문집 태촌집에 이순신의 얼굴 형상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 특이하다.

1816년 정학유의 농가월령가를 낳게 한 것으로 보이는 농가월령은 이보다 200년 앞선 1619년에 지어졌다. 저자 태촌이 벼슬을 마치고 낙향해 살던 흥덕동 예골 고택이 이 작품의 산실이다. 농가월령은 농민들이 농사를 짓는데 참고가 될 내용을 월별로 정리해 놓았다. 고택 주인의 선견지명과 실용적인 선비모습을 잘 볼 수 있는 저작이다.

영강이 한껏 펼쳐져 굽이치다 머무는 곳. 이 물이 곧 낙동강에 이르는 곳. 이런 곳을 조망하는 터 위에 이 고택은 자리하고 있다. 고택 옆에는 태촌이 후학을 가르치던 강당인 영고서재(潁皐書齋)와 그의 사당인 영고사(潁皐祠)가 있으며, 태촌이 산책하고 생활하던 정자 터, 옛길 등이 남아있다. 또 주변엔 태촌이 함창현감 시절 조성한 수정보(水晶洑)가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넓게 펼쳐진 영신 들녘을 적시고 있다.


매일신문 문경 고도현기자 dory@msnet.co.kr

매일신문 고성환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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