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채인식 씨 자서전 발간 화제
문경에 살고 있는 채인식(80) 씨가 최근 ‘아버님의 고생과 나의 고생’이라는 자서전을 발간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오랫동안 글을 모르고 지내다가 글을 깨우치고, (사)국학연구회에서 자서전 쓰기 강의를 듣고 쓴 것이다.
제목처럼 아버지와 자신의 일생이 ‘고생’으로 점철돼 있다. 특히 아버지는 9살에 고아가 되어 반평생이 되도록 남의 집 밥을 먹고 살았다. 배우고 싶어도 남의 집 머슴살이라 별보고 나가면 별보고 들어오니 배움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가셨다.
그런 가운데 아버지 34세 태어난 채인식 씨도 아버지처럼 가난을 쓰고 살아야 했다. 아버지 따라 만주에 가 살면서 마적단에 털리던 모습도 목격했고, 죽음을 무릅쓰고 귀국길에 오르기도 했다.
그 가운데 먹지 못해 동생이 죽고, 귀국해서는 나무를 해다 팔고, 동냥도 해야 했다. 18세에는 은척면 장암리 부자 집으로 가 1년에 쌀 3가마 받기로 하고 머슴도 살았다. 19세에는 외가에서 같은 조건으로 머슴을 살았다.
그러다가 가은으로 이사 와 은성광업소 하청에 들어갔고, 이곳에서 1967년 결혼했다. 이후 1968년 장자광업소에 다니면서 월급 15만원을 받았다. 그가 다닌 광업소만 대동, 가섭, 단봉 등 당시 문경의 중요 광산이 망라돼 있다.
광산 다닐 때 기록에는 광산에서 하는 일과 광산용어, 광산 사고와 동료들의 죽음 등이 나타나 있어 이 분야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 후 돈을 벌어 집을 짓고, 땅을 사고, 그 땅에서 1988년 문경군수로부터 다수확상을 받기도 했다.
그 속에 채인식 씨는 자신이 부르고 있는 모심기 소리, 상여 선소리, 달구질소리를 적었고, 한시, 가사, 여러 가지 전설을 소개했으며, 자신의 생각이 담긴 글도 써 담았다. 작자 유전인자에 상당한 인문학적 요소가 들어 있음을 알게 해 준다.
채인식 씨는 “제가 워낙 고생을 했으나 부모님 고생을 상상해 보니 더 큰 고생을 많이 하시어 자식으로서 눈물이 앞을 가린다.”고 말했다.
(사)국학연구회 신후식 이사장은 “주변에 나름대로 사회에 공헌하고 자수성가한 분들이 많다지만 이렇게 자서전을 쓴 분은 극소수다. 우리 근대사의 고난을 몸소 겪으며 말과 글로 다 표현하지 못한 가난은 대를 물려받았지만 끝내 자수성가한 분”이라고 말했다.
문경매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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