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소설] 함창사람 김준식(1)
박계해
2002년 경북 문경의 가은읍에 귀촌하여 2011년까지 살았던 박계해 작가의 중편소설. 그동안 ‘빈집에 깃들다’, ‘나의 카페, 버스정류장’을 펴냈다. 문경 출신 박열이 함창초등학교 출신이라는 것과 함창이 우리나라 협동조합의 산실이라는 사실에 기초하여 이야기의 옷을 입혔다.
………………………………………………………………. 율 …………………………………………………………………
‘박열 열사가 사형을 언도받았다.
열사는 사형선고를 내린 재판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재판장, 자네 수고했네. 내 육체야 자네들이 죽일 수 있겠지만 내 정신이야 어찌하겠는가
박열 선배님 만세!‘!
먹물로 서툴게 쓴 대자보였다. 주재소 인근의 벽에 붙여진 것을 헌병이 가지고 왔다.
‘박열 열사는 우리 선배다’라고 자신의 신분을 스스로 불고 있는 대자보라니-. 율의 짓이 분명하다. 준식은 어눌하지만 뚝심 있는 율이 기특하면서도 그 바보스러움이 안타깝다. 교장은 교사들의 태만으로 기강이 해이해 진 탓이라며 길길이 뛰었다.
긴 재판을 이어오던 박열 선배님이 결국 사형을 언도받았다는 기사를 며칠전에 읽고 마음이 착잡하던 참이었다. 박열 선배님 측에서는 증거불충분을 주장하며 항소심을 신청해 둔 상태라 한다. 조선인의 민심을 건드릴 수도 있어 함부로 하지는 못할 거라는 게 유일한 희망이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올 해를 끝으로 학교교육을 받지 못할 것이었다. 그래서 틈만 나면 민족교육을 하고 싶은 조바심에 박열 선배를 자주 들먹이긴 했다. 하지만 이 신문기사는 아직 들먹이지 못했는데 녀석은 어떻게 알았던 것일까.
끝까지 찾으리라는 교장의 각오가 무색하게 율은 순순히 앞으로 나섰다. 웅성대는 아이들을 뒤로 하고 걸어가는 율의 뒷모습을 보며 준식은 안타까움과 함께 가슴이 뭉클했다.
당장 퇴학을 시켜야 한다는 교장에게 ‘긁어 부스럼을 만들면 안 된다’고 준식은 끈질기게 설득하였다. 학교 안에서 끝날 일을 확산키는 것은 아무런 정보도 없는 학부모들의 관심을 부채질하여 동요를 일으키게 될 거라고.
결국 한 달 동안 수업에 참여 못하고 매일 반성문을 쓰고 청소를 하는 것으로 일단락 되었다. 또, 다시는 그런 일을 벌이지 않겠다고 각서도 썼다.
율은 벌써 며칠 째 교장실로 훈육실로 불려 다니고 있다. 준식은 오늘은 자신이 책임지고 지도하겠다는 약조를 하고 율을 혼내는 중이었다. 준식은 훈육실 밖으로 소리가 잘 새어 나가도록 창문을 조금 열고 목소리에 핏대를 세우며 회초리를 휘둘렀다.
일본 장교출신인 교장은 율의 무릎을 꿇리고 일본인의 우수성과 조선인의 어리석음을 질리도록 늘어놓을 것이고, 그것은 율에게 회초리보다 더 지긋지긋한 괴로움이리란 걸 준식은 알고 있었다.
(내일 또....)
문경매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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