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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소설] 함창사람 김준식(4)
박계해
등록날짜 [ 2021-01-21 19:20:00 ]

[중편소설] 함창사람 김준식(4)
 


박계해

2002년 경북 문경의 가은읍에 귀촌하여 2011년까지 살았던 박계해 작가의 중편소설. 그동안 빈집에 깃들다’, ‘나의 카페, 버스정류장을 펴냈다. 문경 출신 박열이 함창초등학교 출신이라는 것과 함창이 우리나라 협동조합의 산실이라는 사실에 기초하여 이야기의 옷을 입혔다.

[함창 김씨]

함창공립학교를 졸업할 당시 준식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월등한 성적으로 경성고등보통학교 사범과 입학시험 자격을 얻었다. 그러나 입학금은 고사하고 당장 경성에 갈 여비조차도 아쉬운 지경이었다. 예상 못한 일은 아니었지만 현실로 맞닥뜨리자 앞이 캄캄했다.

사실, 담임선생님이 끌려가던 날 모든 게 끝난 것인지도 몰랐다. 동문장학회를 통해 입학금은 반드시 지원받아 주리라던 선생님이었는데, 일단 입학만 하면 선생님 자신처럼 고학할 수 있는 길이 열릴거라 했는데, 모든 게 아득히 불투명한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래도 선생님 말씀처럼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을 거라 믿으며 이를 악물고 공부 했던 것이다.

준식은 모든 것이 허사가 될 것임을 생각하고 가슴을 쥐어뜯었다. 준식은 엄마가 양조장에서 가끔 가지고 오는 쉬어터진 막걸리를 주전자 째 들이키고 마루에 널부러져 있다가 문득 할아버지가 벽장 속에 모셔 둔, 그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논문서를 들고 면사무소로 달려갔다. 달리면서 그는 악다구니를 쓰며 울었다.

모두 서류만 들여다 보고 있는 면사무소의 그 냉담한 기운에 어린 준식은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사실, 뾰죡한 수라고 생각해서 달려온 것이 아니었다. 술을 마신 혼미한 상태에서 그저 그렇게 한 것일 뿐이었다.

면사무소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증촌의 왕릉으로 발길을 돌렸다. 준식은 왕릉을 지키는 네 개의 석조물 가운데 하나인 석양의 몸통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한 줄기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석조물의 냉기가 등골을 오싹하게 했다. 왕릉을 둘러싼 대나무 숲에서 쏴아 바람소리가 나더니 준식의 얼굴로 몰려왔다. 준식은 바람과 함께 무언가 둔중한 어둠이 눈앞에 우뚝 멈추는 것을 느꼈다.

눈을 떠 보니 수염이 허연 할아버지가 준식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준식은 지쳐있었으므로 놀라지도 않았다. 저 할아버지는 귀신인가…… 준식은 그렇게도 생각했던 것 같다.

준식은 난데없이 등장한 할아버지가 묻는 말에 고분고분, , 눈물을 주루룩 흘려가며 대답했다. 그가 누구인지, 왜 이렇게 이야기를 줄줄 하게 되는 것인지 그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그냥 그 누구에게라도 넋두리하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그 넋두리가 절망을 희망으로 바꾼 웅변이었음을 준식은 하룻밤 자고 나서야 알았다.

다음날, 준식의 학비와 약간의 지원금을 들고 할아버지의 아드님이 집으로 찾아왔다. 그가 할아버지에게 큰 절을 하고 이런저런 집안 얘기를 나누는 것을 듣고 준식은 그 할아버지가 함창김씨 종가의 종손이라는 것을 알았다.

정신이 오락가락 한 지 오륙년이 넘은 할아버지지만 문중 이야기가 나오자 오랜만에 옛날 생각이 나는 지, 지치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내 놓았다. 하긴 문중끼리 왕래하며 예를 지키고 살았던 지가 하마 10년도 넘었던 것이다.

만약 한일합방이 되지 않았다면 고령태조왕릉은 워낙 대농이었던 그 종손 어른에 의해서 잘 보수되고 관리되었을 것이라 했다.

그 날 종손 어른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복잡한 심사를 달랠 겸 집에서 가까운 조상의 묘를 찾았다가 울고 있는 아이의 딱한 사정을 들었고, 그 아이가 사촌의 손자인 것도 알았던 것이다.

담임 선생님 말씀이 맞았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었던 것이다.

그날 준식의 할아버지는 종손어른의 손자가 탄 자전거가 눈앞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오래도록 바라보고 서 있었다. 어쩌면 할아버지의 정신이 돌아온 건 아닐까.. 오랜만에 보는 안정되고 따뜻한 눈을 보며 준식은 핏줄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막연히 생각해 보았다.


(내일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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