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소설] 함창사람 김준식(6) - 문경매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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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01월25일 19시20분 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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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계해

[중편소설] 함창사람 김준식(6)

박계해

2002년 경북 문경의 가은읍에 귀촌하여 2011년까지 살았던 박계해 작가의 중편소설. 그동안 빈집에 깃들다’, ‘나의 카페, 버스정류장을 펴냈다. 문경 출신 박열이 함창초등학교 출신이라는 것과 함창이 우리나라 협동조합의 산실이라는 사실에 기초하여 이야기의 옷을 입혔다.

[타다요시]

현실을 제대로 알게 된 것은 졸업반이 되어서 만난 담임선생님 덕분이었다. 선생님은 일본인 교장과 교사들의 눈을 피해 우리나라의 건국신화부터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어떻게 나라를 지켰는지, 한일합방의 진실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셨다.

제국주의 일본은 우리 조선을 일본의 남아도는 생산품을 팔기 위한 시장으로 삼았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 조선인들에게 부당한 세금을 매겨 착취한 돈과 쌀로 본국의 식량부족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미소된장이나 왜간장을 사먹지 않고 우리 된장과 간장을 먹는 것도 나라를 지키는 길이고, 오다마 사탕이 먹고 싶어도 참을 수 있어야 애국자라고 하셨다.

선생님의 구체적이고 사리에 맞는 말은 일본인 아이들에게 왠지 풀죽어있던 준식을 오히려 우쭐하게까지 했다. 그러니까 일본 놈들은 치사한 도둑놈들인 거였다. 준식은 그 때마다 그 나라가 바로 할아버지의 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논을 찾아야 할머니가 니 할애비는 논에 가고수아서 잠도 설치여라고, 웃으면서 군소리를 늘어놓을 것이었다. 준식은 엄마가 일터에서 가져오는 단무지는 안먹고 참을 수 있었지만 고소한 센베이만큼은 먹지 않을 수가 없었다. 초록빛 파래가 고소함에 감칠맛을 더해주는 센베이 만큼은.

하필, 그 논을 산 일본 놈의 아들인 타다요시도 준식과 같은 학년이었다. 준식은 녀석만 보면 빼앗긴 논 생각에 속에서 불이 일었다. 꼴도 보기 싫은 녀석이었지만 같은 방향으로 갈 수 밖에 없는 터라 거의 매일 녀석을 봐야만 하는 것도 고역이었다.

게다가 녀석의 심술은 유치하고 쪼잔하기 짝이 없었다.

한 번은 학교 가는 길에 특이하게 생긴 과자인지 빵인지를 발견하였다. 준식은 조심스럽게 주워서 붙어있는 검부스러기를 털어 낸 다음 먹었다. 과자 같기도 빵 같기도 한 생김새처럼 맛도 그랬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도 그 과자인지 빵인지가 길에 떨어져 있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준식은 과자를 손으로 집다가 문득 어떤 인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타다요시였다. 그는 저만치 앞에서 그를 쳐다보며 씩 웃더니 휘파람을 불며 걸어가는 것이었다.

준식은 녀석을 향해 주운 과자를 힘껏 던졌다. 그러나 과자는 멀리 가지 못했다. 실은 과자가 녀석의 머리에 닿는 것이 더 두려웠던 것이다.

그 다음에 생길 시비의 뻔한 결말을 생각하면 이 정도의 굴욕을 견디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었다. 도대체 일본 사람들은 왜 남의 나라에 와서 할아버지의 논을 빼앗고 타다요시는 내 앞에서 꼴사납게 알짱거린단 말인가.

그 다음날부터 준식은 훨씬 더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섰다. 녀석과 부딪히고 싶지 않아서였다. 똥은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것이라지 않는가. 녀석은 정말 더러운 똥 같은 놈이었다.

그런데 며칠 후 타다요시도 준식이 집을 나서는 시간에 맞춰 나타났다. 준식은 녀석이 시비를 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를 피해 힘껏 뛰어가고도 싶었으나 꾹 참았다.

타다요시는 졸업반이 되더니 이제 키도 훌쩍 커서 자기 아버지가 타던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다녔다. 자전거 한 대를 사려면 쌀이 열 가마는 있어야 되는데 자전거도 우리 논으로 산 것이라는 억지스런 주장이 불끈 솟곤했다.

일본에서 판로가 막힌 사업을 정리하고 온 돈으로 조선인의 땅이나 건물을 헐값에 사들인 타다요시네 재산은 이미 짐작도 못 할 만큼 많다는데 말이다.

그 논 때문에 할아버지는 정신줄을 놓았고, 아버지는 할 수 없이 소작농으로 전락했다. 그리고 엄마는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온갖 명목으로 뜯어가는 세금 때문에 할머니는 때꺼리 걱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니 준식의 사친회비도 자꾸만 밀려서 학교생활이 가시방석이었다.

준식은 일본 사람들이 함창면에 나타나지 않았던 시절이 그리웠다. 그 때 할아버지는 얼마나 활기에 넘쳤던가. 아버지와 엄마와 우리 모두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정말이지 타다요시가 없던 때는-.



문경매일신문

문경매일신문 (shms2015@daum.net)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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