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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01월26일 19시25분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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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계해

[중편소설] 함창사람 김준식(7)

박계해

2002년 경북 문경의 가은읍에 귀촌하여 2011년까지 살았던 박계해 작가의 중편소설. 그동안 빈집에 깃들다’, ‘나의 카페, 버스정류장을 펴냈다. 문경 출신 박열이 함창초등학교 출신이라는 것과 함창이 우리나라 협동조합의 산실이라는 사실에 기초하여 이야기의 옷을 입혔다.

[담임선생님]

준식은 겨우 네 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형님 같은 담임선생님이 좋았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선생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싶었다. 담임선생님은 교장이 출장이라도 가면 유난히 더 다정스럽게 대해 주셨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박열 선배의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었다. 박열 선배와 선생님은 경성고등보통학교에서 같이 공부했는데 졸업하면 각자 자신의 모교로 돌아가 선생님이 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친구 박열은 3.1운동을 주동했다는 이유로 잡혀가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친구인 선생님의 이름을 불지 않았고 본인만 퇴학을 당했다고 했다.

그래서 선생님은 자신의 모교가 아닌 친구 박열의 모교로 자원했다는 것이었다. 그 때 일본으로 건너 간 박열은 독립운동을 하다가 지금 차가운 감방에 갇혀있다고, 그러니 힘들어도 희망을 잃지 말고 열심히 배워야한다고, 나라를 잃으면 영영 희망이 없다고, 한낱 보잘 것 없는 자신들에게 커다란 말씀을 해 주신 것이었다.

그만한 이야기를 들려준 분은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준식은 선생님 말씀은 듣는 둥 마는 둥 딴청을 피우는 고자질쟁이 대식이를 곁눈질 하며 은근히 걱정을 하기도 했다.

선배 박열의 이야기를 듣고 준식은 아버지가 자랑스러워졌다. 3.1만세운동 때 맞은 몰매로 큰 힘을 쓰지 못하는 아버지를 한심하게 여긴 적도 많았던 것이다.

[3.1만세운동]

3.1운동은 들불처럼 서서히 전해져 며칠 안 되어 함창면도 술렁거렸고 주재소는 밤낮없이 비상근무를 하고 감시의 눈길을 매섭게 세웠다.

불과 한 달 열흘 전, 고종황제가 승하했다는 소식에 온 가족이 상복을 차려입고 동구 밖으로 나갔다. 온 국민이 그렇게 상복을 입고 땅을 치며 울었다고 했다. 어린 준식도 어른들의 슬픔이 자신의 슬픔인 것을 느꼈다. 황제가 일제에 의해 독살되었다는 그 조심스런 두런거림에 어린 준식도 가슴을 치며 울었다. 그 원통함이 불씨가 된 3.1운동이었기에 분노는 더욱 크고 높았던 것이다.

상주군에도 3월 중순에 서울에서 유학한 한암회와 상주공립보통학교 출신들이 주동이 되어 만세 운동을 준비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도 의심을 덜 받을 수 있는 장날에 상주시장에서 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언문을 깨친 지역 청장년들이 비밀리에 연락을 주고받으며 만세모임에 협조하고 있었다. 함창면에서는 준식의 아버지 김성모와 채경철, 박인권 등 같은 서당 출신들이 함창, 이안, 태봉, 신안 등지로 사발통문을 돌려 만세 운동 참여를 독려하였다.

323일 이른 아침, 김성모는 하얀 두루마기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모여서 가지 않고 각자 출발하였다.

시장의 분위기는 평상시와 다름 없었다. 다만 묘한 긴장감이 담긴 눈빛들이 많았다. 당일에 입에서 입으로 전해 듣고 동참의 마음을 굳히는 이도 많았지만 드물게는 슬그머니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오후 다섯 시가 가까워 오자 사람들은 시장 한켠에 있는 누각 앞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준비위원인 듯한 10여명의 젊은이들 중에는 보통학교 교복을 입은 소녀도 있었다. 스무 살이 되었을까 말까 한 그들을 보며 김성모는 가슴이 애잔하였다.

젊은이들이 태극기를 준비해 오지 못한 사람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주었다. 노인들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그들을 격려하였고 아주머니들은 기어이 눈물을 흘렸다.

정확히 삼심분 후, 누각 위에 한 청년이 우뚝 섰다. 행사를 주도한 한암회였다. 그는 독립선언문이 담겨 있는 긴 화선지의 앞면을 군중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 독립선언서가 인쇄되어 여기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난관이 있었는지를 역설하였다.

그는 한 자 한 자 단호하고 막힘없이 우렁차게 읽어 내렸다. 그동안 얼마나 들여다 보았는 지 인쇄물을 보지도 않는 것 같았다. 군중들의 눈빛도 점점 뜨거워져 갔다.

선언문이 끝나자 공약삼장은 한 소절씩 끊어서 선창을 하고 군중들은 목청껏 따라하였다. 그 소리가 어찌나 우렁찼던 지 시장통 안의 일본인 가게들은 놀라서 문을 걸어 잠그기도 했다. 차마 목이 메어 외치지도 못하고 뺨 위로 눈물만 줄줄 흘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독립선언서에 도장을 찍은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이 한 명 한 명 불리워졌다.그리고, 드디어 한암회는 결기에 찬 주먹을 부르쥐고 만세삼창을 했다. 이어 거기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태극기를 높이 들며 따라 외쳤다.

역시 엄청난 소리였다. 이어서 어디선가 소리를 지르며 달려온 헌병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들 중 한 명이 한암회의 두루마기를 움켜쥐고 끌어내려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군홧발로 짓밟았다. 그러자 놀란 사람들은 웅성거렸고 여자들은 울부짖기도 했다.

그 때 상복을 입은 한 청년이 한암회가 섰던 자리로 올라가 외쳤다.

나는 내서면에서 온 성해식입니다. 배운 바도 없고 미천한 사람이지만 조선독립을 위해 만세를 부르겠습니다. 여러분 독립만세를 부릅시다!” 그리고 큰 소리로 만세를 불렀다.

헌병은 성해식의 뺨을 때리고 발로 걷어서 넘어뜨렸다. 어디선가 더 많은 수의 헌병들이 나타났고 허공에 대고 몇 발의 총을 쏘았다. 사람들은 혼비백산했고 이리저리 흩어지는데 헌병들은 닥치는 대로 곤봉을 마구 휘둘러댔다.

스무날이 넘도록 치밀하게 준비한 만세운동 모임이 그렇게 순식간에 끝나고 만 것이었다.

김성모는 머리를 맞고 쓰러졌고 헌병은 그를 마구 짓밟고 때렸다. 물론 그 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쓰러져 짓밟혔다. 그리고 헌병들은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청년들을 모두 굴비 엮듯 엮어서 발로 차며 곤봉으로 때리며 끌고 갔다.

김성모는 그 날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닥치는 대로 유치장에 집어넣어 좁아진 공간은 다리를 뻗기도 힘들 정도였다. 다행이라면 오백여명 중 끌려온 사람은 서른명 남짓 하다는 것이었다. 상처가 난 머리는 누군가가 두루마기를 찢어 흐르는 피를 수습해 놓았지만 정작 심하게 다친 곳은 팔다리였다. 그러나 비단 그만의 경우는 아니었다. 거기에 성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육체의 고통보다도 더 견딜 수 없었던 것은 경찰서 어딘가에서 고문을 당하는 청년들의 신음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울분을 주체할 수 없었던 김성모는 자신도 모르게 목청껏 소리를 질러대고 말았다.

대한독립만세! 대한독립 만세!”

어떤 새끼야!’ 하고 소리를 지르며 헌병이 달려오는 구둣발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누군가가 또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러자 모두 대한독립만세를 외쳤고 김성모는 그것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함임을 알았다. 불같은 뜨거움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다음날 그들이 풀려난 것은 순전히 수감공간이 모자라서였다. 유치장에 잡혀 들어오지 않은 성난 사람들이 주재소와 공공기관, 심 지어 일본인 상점에까지 불을 지르거나 돌을 던져서 계속 잡혀들어 온 탓이었다.



문경매일신문

이민숙 대표 (shms2015@daum.net)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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