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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소설] 함창사람 김준식(10)
박계해
등록날짜 [ 2021-01-29 19:45:00 ]

[중편소설] 함창사람 김준식(10)

박계해

2002년 경북 문경의 가은읍에 귀촌하여 2011년까지 살았던 박계해 작가의 중편소설. 그동안 빈집에 깃들다’, ‘나의 카페, 버스정류장을 펴냈다. 문경 출신 박열이 함창초등학교 출신이라는 것과 함창이 우리나라 협동조합의 산실이라는 사실에 기초하여 이야기의 옷을 입혔다.

[그 박열이라는 선배]

아버지는 이 왕릉이 조상의 것이라고 했다. <고령태조왕릉>이라고 새겨진 이끼 낀 돌비석을 가리키며, 그는 왕이었다고, 우리 함창김씨는 왕족이라고, 한일 합방이 되기 전에는 후손들이 당번을 정해 왕릉을 관리해 왔다고 했다.

왕릉을 손질하는 날에는 잔소리가 없던 아버지도 제법 책에서나 나올 교육적인 말씀을 하곤 했다. 조상을 욕되게 하지 말아야한다고, 항상 올바른 정신으로 살아야 한다고, 어쩌면 자신에겐 듯 훈수를 두곤 했다.

족보 따위는 관심 없었던 어린 준식은 왕릉의 등에서 미끄럼을 타며 여봐라~ 여봐라~’하고 키득 대며 왕의 흉내를 내며 놀았다.

고학년이 되고서는 남들은 인정도 하지 않는데 함창김씨들만 왕족이라고 떠든다는 말도 있는 것을 알고 더 이상 아버지를 따라가지 않았다. 아니, 아버지도 왕릉을 돌 볼 만큼의 여유를 잃어버렸던 것이다.

왕릉은 한동안 돌보지 않은 것을 누구라도 알 수 있을 만큼 마른 억새며 망초로 형체를 알수가 없게 되어 있었다.

하긴 이 시국에 직계조상도 아닌 산소를, 쌀 한톨 나오지 않는 무덤따위를 누가 돌본다는 말인가. 숨이 가쁜 준식은 풀밭에 털썩 주저앉았다. 비로소 눈물이 삐질삐질 솟고 목구멍이 콱 막혀왔다. 나라도 없는데, 선생님도 잡혀갔는데 왕족은 무슨-.

낮은 무덤위로 어둠이 스며들고 있었다. 준식은 그만 저 속으로 들어가 영영 사라져 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내일은 이제 학교를 가야 할 것이다. 담임 선생님 대신에 칼을 찬 일본 선생이 들어오겠지. 사친회비가 밀렸으니 굴욕과 수모를 당하게 되겠지. 대식이놈은 그런 내 모습을 보고 고소해 할 것이 분명하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준식은 서당에 다니다가 신학문을 배우고 싶어서 문경 마성에서부터 수십 리가 넘는 길을 걸어 다니며 우리학교를 다녔다는, 그 박열이라는 선배를 생각했다.

선배는 별도 채 사라지지 않은 새벽에 주먹밥 두 개를 싸들고 40리나 되는 길을 걸어서 우리 학교를 다녔다지 않는가. 토끼비리 바윗길을 걸어 견탄나루터까지 가서 나룻배로 원골까지 가고 또 유곡 장승백이를 지나 모전 음지마를 거쳐 학교를 다닌 이야기를 친구 박열에게 들었다는 담임선생님은 우리 모두 그를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모순된 일제의 행위와 우리 민족의 비참한 현실에 서러움과 울분을 토해내던 박열 선배가 가장 그리워 한 것은 고래가 바다를 헤엄치는 듯 웅장한 주흘산이었다고 했다. 매일 그 웅장한 산을 보며 학교를 다닌 탓인지 친구 박열은 그만큼 그릇이 깊고 넓은 친구였다는 것이다.

동정심이 깊고 너그러운 면이 많았지만 한편으론 기가세고 당차고 건방지다 할 만큼 당당해서 독종이라는 별명도 가졌다고 했다. 담임선생님은 박열의 자리에 자기가 서 있다는 것을 한 시도 잊지 않는다며 아이들의 학업을 독려했다.

준식은 그렇게 애써 들어간 사범과였는데 졸업을 못했다는 박열 선배와 끌려가신 담임선생님 대신에 자신이 꼭 선생님이 되어 그 분들의 뜻을 이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며칠 후 남은 임기를 채울 임시 교사가 배치되어 왔다. 손톱만치의 잘못도 용납하지 않을 것 같은 군인출신의 선생이었다. 준식은 학교로 가자마자 무단결석을 한 데 대한 일장 훈시를 들은 다음 벌로 변소 청소를 했다. 청소를 하는 것은 괜찮지만 수업을 빠지면 뒤처질 것이 걱정이었다.

준식은 반드시 일등을 해서 경성고등보통학교 사범과에 입학시험 자격을 받아야 한다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교장의 닦달에도 어떻게든 아이들을 지켜주던 담임선생님과 달리 새 담임은 사친회비가 밀린 아이들을 교실에서 쫓아내고 뺨을 때리는 등 괴롭혔기에 졸업을 목전에 둔 채 학교를 그만 둔 아이도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준식은 학교의 명예를 빛 낼 재목으로 인정도 받아 뺨은 맞아도 교실에서 쫓겨나지는 않았다.

그래도 일본인 담임의 모욕을 참아내기 힘들었던 준식은 처음으로 울며 떼를 썼고 엄마는 양조장 주인에게 빚을 얻어 밀린 사친회비도 냈다. 준식은 졸업을 할 때까지 눈 밖에 나는 일은 금하고 몸을 사리기로 했다.

유치한 타다요시나 대식이 따위에게 날을 세우는 것이야 말로 헛된 시간낭비일 뿐이란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준식은 이제 제기차기나 팽이치기도 시시해졌다. 저 일본선생 같은 치사한 삶은 조금도 부럽지 않았다. 박열 선배나 담임선생님처럼 멋진 사람이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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