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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시장 예비후보 고오환(高五煥) 탐구
산전수전 다 겪은 경륜의 서민후보
등록날짜 [ 2012-01-29 16:20:10 ]

문경시장 예비후보 고오환(高五煥) 탐구
산전수전 다 겪은 경륜의 서민후보

4.11 문경시장 보궐선거를 73일 앞둔 1월 29일 일요일. 고오환 예비후보는 바쁜 일정 중에 취재진과 숨을 고르며 마주했다. 표정에선 결연한 의지가 풍겨져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 연세도 있으신데, 선거운동이 힘드시지 않습니까?
제 나이가 집에 나이로 71세. 만 70세. 신축생(辛丑生)입니다. 젊어서 운동을 많이 해서 힘든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기운이 더 나는 것 같다. 내 건강은 주위의 검증을 받았지 않는가(웃음). 

- 다녀보시니까 공기는 어떻습니까?
선거 공기가 어떤지는 기자들이 더 잘 아는 거 아닌가? 나 뿐 만 아니라, 후보들은 모두 자기에게 좋은 공기가 있다고 보는 것 같다. 공기는 늘 돌고 돈다. 순환하는 자연의 이치와 같다. 좋은 공기가 불도록 최선을 다 할 수밖에 없다. 최선을 다 하고 있다.

- 고향이 어딘가?
영순면 왕태1리다. 개성고씨 양경공파 문경 입향조 퇴산(退山) 사(士)자 원(原)자 할아버지의 17대손이다. 어려서부터 우리 집은 너무 가난했다. 그래서 학교도 제때에 졸업하지 못했다. 문경고등학교를 동기들보다 몇 년 늦게 졸업했다. 다 가난 때문이었다.

<사진>왼쪽 앞줄에서 4번째(가운데) 상장을 든 소년이 고오환 후보다.


- 젊은 시절 육상으로 명성을 떨친 것으로 알고 있다.

영순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다. 왕태골에서 학교까지 멀었다. 그 먼 길을 오고가는 것이 지루하고 무료해 늘 달렸다. 더 넓은 들판 길을 달리면서 꿈을 키웠다. 체력도 그때 단련되었던 모양이다. 날이 갈수록 실력이 향상되었다.

1957년 열 여덟 살 때 마라톤, 1만m, 5천m, 1,500m에서 경상북도 대표선수까지 뽑혔다. 그리고 내리 3년 동안 전국대회에 출전하는 등 문경에서 이름을 날렸다. 그 때부터 한 동안 문경이 경상북도에서 육상을 비롯해 체육을 잘 하는 곳으로 자리하게 되었고, 그 중심에 항상 서 있었다. 선수로, 후배들을 지도하는 자리로 젊은 시절을 보냈다.

자랑스러운 문경의 육상인들이 있는데, 노석규 교장, 대구에 있는 고재만(전 문창고 교사), 국가대표 마라톤 선수 채홍락, 권은주 등이 그 이후 쭉 문경 육상의 명예를 이어왔다.

- 가난했지만 화려한 청춘을 보내고 중년에 덕 좀 보았는가?

불행히도 그렇지를 못했다. 아버지와 함께 농사도 지어 봤는데, 신통치 못했다. 농사를 지으면서 한 가지 배운 것은 아버지의 지혜였다. 나보다 배운 지식도 적었는데, 같이 밭을 매면 아버지는 슬쩍 슬쩍 하시는데도 꼼꼼히 하는 나보다도 밭을 더 깔끔히, 더 많이 매셨다.

사는 게 지식으로만 되는 게 아니란 걸 그때 깨달았다. 많은 경험과 각고의 노력으로 쌓은 나이에 따른 경륜과 지혜가 삶에 더욱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 광산에도 다니셨던데
나이가 들면서 운동으로 먹고 살기 어렵게 되었고, 아버지와 농사를 지어 봐도 신통치가 않아 광산 막장에 들어갔다. 장자광업소 선산부로 6년, 삼창광업소 7년 등 13년을 광산에 종사했다. 그러나 광산에서도 돈벌이는 신통치 않았다.

- 다방을 하셨다는 말이 있는데?

사람한테 팔자가 있다는 걸 그때 알게 되었다. 친구들이 광산에서 고생하는 걸 보고, 그래서는 안 된다며, 다방을 해 보라고 건물을 빌려 주고, 업계의 흐름도 알려 주고, 말하자면 상을 다 차려주었다.

처음엔 선뜻 내키지 않았고, 나서지도 못했다. 이 길이 그동안 살아오며 쌓아온 작은 이름을 더럽히는 건 아닌지 고민했다.


그러나 당시 점촌에 수 백 개의 다방이 성업 중이었고, 그것이 시민들의 생활문화 가운데 중요한 만남의 장소, 노는 장소로 직업의 귀천이 있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 순간부터 다방이 잘 됐다.

사람은 저마다 타고난 팔자에 따라 살아가고, 살아가는 방식이 다 다르다. 그걸 가지고 흉본다는 것은 자기 얼굴에 침 뱉기다.

문경에서 누구에게 거짓말 안 하고, 돈 안 띠 먹고, 떳떳하게 치열하게 밑바닥에서 살아왔다. 진정한 서민으로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살아왔다.


고맙게도 다방을 하면서 4남매 자식들 공부시키고, 지금까지 남한테 손 안 벌리고 살도록 밑천을 다졌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며, 자식들도 그런 이 아버지의 모습을 자랑스러워한다.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

- ‘여중지구’ 개발을 시작하셨는데, 거기서 돈 좀 벌었는가?

여중지구 토지구획정리조합을 하면서 돈을 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130여 명의 지주들이 순수 민간자본으로 개발하는 것이고, 조합장인 나는 무보수 명예직이었다. 월급이나 판공비가 없는 봉사하는 자리였다.

지주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고, 갈등도 많은 사업이었다. 전국의 많은 개발조합들이 말썽을 많이 일으켰다. 그러나 우리 문경 여중지구 토지개발사업은 7년여 동안 큰 무리 없이 마무리 되고, 지금은 우리지역의 랜드 마크가 되었다. 시청 쪽은 공공개발 형식으로 지역개발이 이루어졌으나, 여중지구는 순수 민간개발이었다. 5만 4천평의 부지에 도시가 형성되어 있는 모습을 보면 감회가 새롭다.

- 그 영향으로 지금 시청 앞에 토지개발을 하게 되었군요.
그렇다. 여중지구 경험을 지주들이 신뢰했던 모양이다. 이곳 토지도 여중지구와 면적이 비슷하다. 50:50의 비율로 지주들이 토지를 분배 받는데, 그 중 조합에 돌아오는 50%의 토지 중 거의 반은 도로 등 공공부지로 나가고, 나머지 반으로 개발비용을 조달해야 한다. 농지전용비만 해도 20억 이상이다. 조합장인 내가 성실하게 하지 않으면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여중지구의 경험과 지주들의 열망을 묶어 또 하나의 지역개발사업에 일조하는 보람으로 일을 하고 있다.

- 시장은 왜 나섰는가?

2006년부터 시의원으로 시정에 일정부분 참여해 왔다. 그러면서 의장을 두 번째 하고 있다. 시정의 더 많은 부분을 책임져 왔다. 그래서 현재 시정의 흐름을 잘 알고 있다.

급한 일, 힘쓸 일 등 시정의 완급을 잘 알고 있다. 이번에 보궐선거로 당선되는 시장은 임기가 2년 남짓이다. 그래서 이번에 시장이 되는 사람은 무슨 일을 새롭게 할 수 없는 형편이다. 임기 동안 새로운 일을 추진하거나, 획기적으로 문경시를 바꿀 정책을 펼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내가 나섰다. 지금 시정 공백을 원만하게 해소해 다음 시장이 안정적으로 시정을 펼 수 있는 바탕이 필요하다. 그런 임무를 내가 가장 잘 수행할 수 있으리란 믿음에서 출마하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 지방자치는 근본적으로 지역주민들이 책임지고 시정을 추진하는 것이다.

화려한 행정 경험이 중요한 것도 아니고, 중앙의 인맥이 중요한 것도 아니다. 우리 시의 예산을 많이 끌어 올 수 있는 바탕은 시민들의 단합된 힘이다.

시장이나 국회의원 한 사람의 능력으로 중앙예산을 끌어오는 시대는 지나갔다. 시민들이 절실히 원하는 것을 단합해서 외치고, 주장하도록 시장이 선도하고, 그 힘을 바탕으로 중앙 예산을 요구하면 안 들어 줄 정부가 없다.


나는 문경에서 밑바닥에서 지금까지 살아왔다. 절대 다수인 서민들과 같은 삶을 살아왔다. 특별히 공부를 잘해 무슨 자격을 갖고 살아 온 것도 아니다. 농사짓고, 탄광 다니고, 다방까지 해 보았다.

시민 누구라도 뜻을 두면 나와 같이 의원도 하고, 의장도 하고, 시장도 할 수 있다는 걸 말해 주고 싶다. 화려한 경력, 안정된 청춘을 보낸 사람보다 산전수전 다 겪은 지혜와 경륜이 있어야 시민들의 힘을 한 곳으로 모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내가 비교 우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은?

나는 지금까지 정당에 소속되지 않고 의원과 의장을 수행해 왔다. 지금 와서 시장하겠다고 어느 정당에 가입해 득표에 도움을 받고 싶은 생각도 없다. 다방을 할 때인 1980년도 경, 점촌 기와집 값이 3~4백만원 할 때, 80석의 다방에서 3천만원이 든 가방을 주운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서슴없이 그 돈을 경찰에 신고해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그만큼 욕심 안 내고, 허욕 안 부리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며 살아 왔다. 물론 흠도 많다. 정치공학으로 의회가 파당을 일으킨 것을 다 수습하지 못한 것이 가장 미안하다. 그러나 사람답게 살아왔다. 시의원, 의장을 하면서 공무원들을 윽박지르며 완장 찬 의정을 수행하지 않았다.

의장 부속실 공무원들을 한 번도 안 바꾸고 생활했다. 그러면서도 시정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무리 없이 수행했다. 공무원들의 사기를 돋아주고, 그들의 능력을 인정해 주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을 새기며, 신바람 나게 일하는 공직 풍토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앞으로 시장이 된다면 그렇게 살아 온 내 정체성이 투영되는 시정을 펼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서민, 경륜과 지혜를 갖춘 서민. 지금부터 시장은 이런 우리의 이웃이 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민숙 대표 (shms200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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