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소향전 21 김경수 소향이 국밥과 열무김치를 들고 나와 탁자에 올리고 수저도 가지런히 놓아주자 대포아지매는 선잠에서 깬 듯한 얼굴로 소향을 보며 말했다. -야야 너그 엄마는 뭘 보고 댕기는지. 사람들이 이리 없으이 뭘 살끼 있겠나? 손님도 없으이. 니가 함 찾아봐라. 여는 내가 있으이- 소향을 내보내고 무당에게 더 들어볼 요량이다.
소향은 -그라몬 지가 퍼떡 갔다 오께예!- 하고는 꽁지머리를 달랑거리며 나간다. -자가 정말로 그리 좋은 사주를 가지고 났심니꺼?- 하고 묻는 대포아지매를 무당은 무시하듯 대답도 없이 수저로 국밥을 입에 퍼 넣는다. 대포아지매는 대답 없는 무당의 행동이 두말할 것 없이 그렇다는 대답으로 여기며 허리를 쭉 펴고 상체를 뒤로 젖히며 -가가 내도 자는 야무지다고는 생각했지만서도- 하면서 삼십만 환의 거금을 머리에 떠 올린다.
이십년 넘게 장사를 했지만 겨우 논 두마지 사놓고 쌀 두 가마 도지 받는 것하고 장터에서 이자놀이 하는 현금 십여만 환 빼놓고는 아무것도 없는 자신에 비하면 머리에 피도 덜 마른 아이가 어떻게 그런 돈을 마련하여 에미에게 점방까지 차려줄 일을 진행하는지, 정말로, 하고 탄식하며 열린 문으로 출렁이는 바다를 하염없이 보다가 자신의 때꼬장물 절은 치마를 보듬어 안고 다리를 세우며 -보살님예! 자가 지보고 저그 엄마 점방 하나 잡아달라 쿠던데. 보살님이 하나 봐주이소!-
입에 남은 고깃덩어리를 씹어대며 무당은 -그래? 음 그렇지. 이번 참에 가몬사 그기야 되지. 그라고 내가 보이께네 아지매 있는 이 터도 괜찮타. 아지매 옆에 빈 점방 있으몬 하나 말해봐라. 내 부적 하나 달아줄 터이니- 하고는 남은 국그릇을 통째로 들고 국물을 후루룩 마신다.
눈살을 찌푸리며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던 대포아지매가 얼굴을 풀고 무당에게 -그란데예. 아침에 조 아랫동네 사는 할바시가 와서 이걸 살끼라고 하던데. 보살님! 이왕 오싰으이 지가 국밥값 안 받을께예 지가 여서 장사를 계속할지 오데 딴 데로 갈지 좀 봐주이소!- -아랫동네 누가?- 입속에 남아있는 찌꺼기를 혀로 이리저리 닦아내며 무당이 묻는다. 털보무당이 비록 인근에 뿌리 내리고 사는 사람은 아니라도 이 바닥에 발을 들이고 들락거린 이래로 벌써 강산이 두 번 바뀌었고 또 그 세월동안 이 사람들 저 사람들 좋은 일 궂은 일 점사주 봐주고 액땜에 심지어는 액 붙이기도 수없이 한지라 삼천포뿐만 아니라 인근 수없는 도서 지방의 사람들 소문이나 소식을 잘 알고 있는 터라 아랫동네 누가 그러냐고 묻는 것이다.
-그 있습니더. 함씨라꼬. 조 아래 덕명에 사는 인정머리 없는 영감인데- 하면서 입이 삐쭉거린다. -응? 함씨? 조 아래 물가에 있는 집 아이가? 그 아들 둘 다 바다에 내다삐린 그 함씨 아이가?- 하고는 눈을 크게 뜨고 대포아지매에게 묻는다.
-맞심더! 그것도 아시네예. 와 아입니꺼. 그기 벌써 운제적 일입니꺼? 해방 전입니더- -알구로! 내가 오래 됐지만 그집 아들들 진혼제 모싯다 아이가? 그기 해방 전인가? 훈가? 아무튼 그집 영감이 산다꼬?-
해방 전이니 벌써 십오륙 년 전이다. 겨울에 만든 해태를 헐값에 왜놈들한테 거의 다 공출당하다시피 뺏기고 함씨네 두 아들은 쪽배를 타고 봄멸치를 잡으러 나갔다. 거의 바람 걱정 없이 하는 것이 봄철 고기잡이인데 그해에는 액이 끼었던지 살이 붙었던지 돌풍이 불었고 작은 목선은 금쪽같던 함씨네 두 아들을 물속에 쳐 넣었었다. 그 일이 있은 후부터 함씨네 내외는 그들이 살고 있는 집 뒤의 바위절벽이 읍내를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그들도 세상을 등지고 살다시피하고 가슴에 지닌 원망과 통한은 인정머리 없는 두 늙은이로 만들고 말았다.
-예. 지보고 점방세를 울매나 주냐고 묻고 합디다. 막상 그 영감이 주인이 되모 내도 밸로 좋은 건 없는데- 하면서 눈을 내리깐다. -와? 아지매야 장사하고 세만 주모 될낀데 와 걱정하노?- 의아한 무당이다.
-그런 일이 있심더. 오늘 아침에- 하고는 대포아지매는 일장연설을 늘어놓는다.
문경매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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