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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소향전 43
김경수
등록날짜 [ 2022-01-03 19:44:24 ]

[연재소설] 소향전 43

김경수

 

기우뚱거리는 고개를 앞세워 작은아지매는 저녁이고 뭐고 그냥 가버렸다. 큰아지매도 안방에 둥지를 틀고 앉아있을 것이고, 배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나니 밥이 먹고 싶지만 혼자 먹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갑자기 째질 듯한 울음소리와 함께 대문으로 광수와 재수가 들어오는데 광수는 무슨 일인지 다리 한쪽을 절면서 들어온다.

 

 

-엄마야-

재수가 먼저 대청으로 오르면서 엄마를 찾는다.

-너그 엄마는 집에 가싰다. 없따. 쿤데, 와 우노? 광수는?-

벌써 어둠이 내린 여름 저녁이다. 소향은 우는 광수를 마루에 앉히고 저는 다리를 들어 올려 살핀다. 발에서 피가 연신 흘러내린다. 흙투성이가 된 발바닥에서 피범벅이 된 상태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제법 큰 상처이다. 소향이 발을 만지자 광수는 더 큰 울음으로 난리를 떤다.

-우찌된 일이고? 발바닥에서 피가 난다. 오데 찔맀나? 비였나?-

광수의 울음소리를 듣고 광수에미가 들이닥치고 큰아지매도 마루로 나와 광수를 달랜다.

-뭐고? 광수야, 무신 일이고?-

작은아지매의 호들갑 속에 잠시 더 큰 울음소리로 답하던 광수는 작은아지매의 무지한 손바닥으로 등짝을 한 대 맞고 나서야 울음을 그쳤다.

-문디가 쫓아오길래 도망가다가 밭으로 들어갔다 아이가-

놀리는 아이들이 성가시고 화가 나서 분명 문둥이떼가 겁주느라 돌아서는 시늉을 했을 테고 그 바람에 아이들이 혼비백산하여 흩어져 도망치는 사이에 광수는 남의 집 배추밭으로 뛰어들었는데 마침 그 밭 울타리가 탱자나무로 되어있어서 그 무지막지한 탱자나무 가시에 발바닥을 깊게 찔린 것이다.

-인제 됐다. 그 봐라. 니가 그리 하이 안 다치나?-

헝겊으로 발을 동여매주며 소향이 광수에게 게눈을 뜨고 중얼거린다.

-남자들은 다 뭐가 그리 바쁜지. 아들도 배고프겠다. 내 배가 허전한 걸 보니. 소향아, 우리 다 대청에서 저녁 먹도록 챙기거라-

옆에 앉은 광수에미에게 시키는 게 아니라 소향에게 시키는 큰아지매다. 광수에미도 허기진 지가 오래고 말싸움 하느라 반찬도 만들지 못한 저녁이 돼버렸다. 서로들 말도 없이 서걱거리는 반찬 없는 저녁을 먹으며 추석이 가까워서인지 밤공기가 이젠 여름 같지 않음을 느낀다.

 

아낙들이 물동이를 채우느라 우물가는 연신 바쁘다. 추석이 사흘 내로 다가오자 평소보다 더 많은 물을 이고 나르는 여자들 때문에 지목수는 성가심을 느끼지만 할 수 없는 노릇 아닌가? 빨리 마저 남은 기와를 이으면 이제 마무리가 되고 인심이 좋다고 소문난 김 회장한테서 추석날만한 품삯도 챙길 것이 설레지만 막상 여자들을 피해가면서 일을 하기란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때론 행동 느린 노인네나 아낙들의 느린 두레박질에 보다 못한 장씨나 지목수가 들어서서 물동이를 채워주곤 한다. 사람이 지붕 밑에서 얼쩡거릴 때면 그 무거운 기왓장 한 장이라도 떨어질 새라 일이 늦어지기 일쑤이다.

 

-장씨, 정각 이는 기다. 임금님 대궐이 아이고. 그저 물새지 않도록 하민사 고만이다-

-아무리 그래도 틈은 맞추어가야지요. 이번에 온 기와는 불이 셋던가 봅니다. 이가 잘 안 맞을 정도로 틀린 것이 많습니다. 단단하기는 하겠지만-

 

불기운이 지나치게 센 가마에서 구워진 탓인가 기와가 일그러졌다는 말이다. 그것을 가지런하게 하기란 또 한품이 더 들어가니 일이 더디다. 나무사다리를 한손으로 잡고 어께에 기와를 한 층씩 올려서 지목수는 지붕으로 오르고 장씨는 조심스레 지붕 위에서 받아 올린다. 밑으로부터 쌓아가니 올라갈수록 일할 수 있는 자리가 부족하고 더군다나 기와를 내려놓을 자리도 점점 좁아진다.

 

-목수님, 이제부터는 아예 쌓을 기와를 다 올려놓아야 일이 되겠습니다. 삼면이 완성됐고 이제 남은 한 면은 기와를 제가 올려드릴 테니 목수님이 위에서 듬성듬성 놓으시지요-

-장씨가 노인네 생각하는구만. 안 그래도 사다리 오를 때 다리가 싸리나무가지같이 후청거려싸서 힘이 들었다네. 그럼 세-

몸이 장씨보다 가벼운 지목수가 지붕 위에서 기와를 받아 여기저기 눈썰미 있게 모아놓고 장씨는 힘을 쓰는 모양새로 어깨 위에 한 다발씩 올려서 사다리 꼭대기로 올라간다.

 

물동이를 한손에 든 소향이 우물에 왔지만 두 사람이 일하는 것을 보고는 멈칫거리며 선뜻 물을 뜨지 못한다. 장씨가 기와를 올리며 그 모양을 보고

-아가씨는 저쪽에서 물을 기르면 된다. 이쪽으로는 오지 말고-

대답 없이 소향은 사다리가 놓인 반대편으로 가서 물바가지를 우물 속으로 늘인다. 한 발씩 줄을 당겨보는데 함석쪼가리로 나무에 이어붙인 두레박이 온통 구멍투성인가 물이 반도 남지 않은 채 올라온다. 그래도 소향으로서는 그저 열심히 물을 퍼 올리는 수밖에. 장씨가 주르륵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기와를 두어 번 올리다가 기어이 소향이 옆으로 온다.

 

-아가씨, 그 두레박 좀 보자. 물을 푸는 게 아니라 흘리는 게 더 많구만-

하고는 두레박을 받아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달구지 연장통으로 가서 망치와 못을 찾아서 여기저기 못질을 하고 양철을 펴고 누르고 굽히고 하더니 돌아와서 손수 우물에 넣고는 한 바가지 퍼올린다.

-음 한결 낫구만. 이제 됐네-

하고는 소향에게 돌려주고는 사다리로 돌아간다. 소향이 한 바가지 퍼 올리니 손과 팔에 느껴지는 무게부터가 다르게 묵직하다. 물이 새지 않고 온체로 올라온다는 얘기다.

-아저씨예, 고마버예-

인사를 남기고 소향이 따뱅이를 머리에 이고 줄을 입에 문다.

-그거 이겠나? 내가 이어줄까?-

사다리 위에서 인사를 받던 장씨가 내려다보다가 옹기 속에 담긴 물을 보고는 묻는다.

-언지예. 지가 할 수 있습니더-

철들고부터 한 일 아니던가? 대폿집에서도 수없이 이고 날랐던 물동이라 소향은 능숙하게 배 위로 들어 올리고 거기서부터 손바닥을 미끄러져 물동이를 가슴까지 올리고 나서 비로소 팔을 뻗어 머리에 앉힌다. 아무리 기술 좋게 한다고 해도 일렁거리는 물결 때문에 흘러내리는 물이 머리로 턱으로 그리고 가끔은 가슴팍도 적시는 경우가 있다. 입에 물고 있는 따뱅이 줄을 타고 물이 뚝뚝 떨어지자 소향은 훑어가며 박자를 넣고 걸어간다.

 

-지붕 위에 앉으이 동네가 다 훤하게 보인다. 쿤데아까 그 젊은 처자가 종가로 가는데. 그 집에 그런 처자가 있었나? 장씨?-

하면서 지목수는 눈을 맞은편 김씨 종택에 두고 있다.

-그래요? 조금 전에 물이고 갔던 그 아가씨요?-

-, 전에 그 집에 몇 번 갔었지만 본적이 없는데. 안글나?-

-우리가 뭐 그리 많이 갔다고 그집 식구들 머리수까지 다 셉니까? 딸이거나



 

 

문경매일신문

 

이민숙 대표 (shms201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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