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소설] 함창사람 김준식(9)

박계해
뉴스일자: 2021년01월28일 20시00분

[중편소설] 함창사람 김준식(9)

박계해

2002년 경북 문경의 가은읍에 귀촌하여 2011년까지 살았던 박계해 작가의 중편소설. 그동안 빈집에 깃들다’, ‘나의 카페, 버스정류장을 펴냈다. 문경 출신 박열이 함창초등학교 출신이라는 것과 함창이 우리나라 협동조합의 산실이라는 사실에 기초하여 이야기의 옷을 입혔다.

[담임선생님 2]

2학기도 후반인 어느 날이었다. 교실 앞문이 열리고 교장이 들어왔다. 담임선생님의 얼굴은 순간 돌처럼 굳었다. 교장은 선생님에게로 저벅저벅 걸어가더니 눈을 매섭게 뜨고 노려보았다. 그걸 바라보는 준식은 몸이 뻣뻣해져서 숨을 쉴수도 없었다.

교장은 다짜고짜 선생님의 뺨을 후려쳤고 선생님은 몸이 휘청 돌아가면서 칠판에 쿵 부딪혔다. 선생님의 와이셔츠에 붉은 피가 튀었고 교장은 발로 선생님을 걷어차며 짐승을 몰 듯 몰고 갔다.

잠시 후 준식과 반 아이들은 헌병차가 운동장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고 곧 수갑을 찬 담임선생님이 그 차에 오르는 것을 보았다.

준식은 차창으로 선생님이 교실 쪽을 보는 것만 같았다. 준식은 자기도 모르게 허리를 접어 공손하게 절을 했다. 주먹이 꽉 쥐어지며 심장이 타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

준식은 대식이를 의심했다. 그 새끼가 선생님이 수업한 내용을 일러바친 것 아닐까, 그 새끼는 선생님의 귀한 말씀도 못 알아먹을 놈이다. 제 아버지를 닮아 일본교장에게 잘 보이려고 안달인 녀석이다. 우리가 학교를 마치고 금지된 전통놀이인 제기차기나 팽이치기를 한 것도 일러바쳐서 우리를 교장실에 불려가게 한 놈이다. 무엇보다도 그깟 오다마사탕에 눈이 팔려서 타다요시를 비롯한 일본아이들의 졸개노릇이나 하는 멍청이다.

담임선생님이 칭찬은 고사하고 고자질은 나쁜 거라는 꾸지람만 했으니 앙심을 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날 우리에게 한 말씀이 문제가 된다 해도 기껏 국산품을 애용하라는 말 정도인데 그렇게 헌병이 찾아오기까지 한 것을 보면 뭔가 다른 일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다음날 준식은 학교를 가지 않았다. 선생님이 끌려간 교실과 운동장을 차마 쳐다 볼 수조차 없을 것 같았다.

주머니에 돌 두 개를 넣고 주재소근처 모퉁이에 숨었다. 저 안에 우리 선생님이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벌써 저 어딘가 감옥이 있는 도시로 갔을지도 모른다. 슬픔과 분노가 가슴 한켠을 쓰리게 했다. 이럴 때 박열 선배라면 주재소에 불이라도 질렀을 것만 같았다.

준식은 주머니속의 돌을 꽉 움켜쥐었다. 주재소 문이 열리며 헌병 하나가 걸어 나왔다. 준식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슬금슬금 길을 벗어나 힘껏 내달렸다.

달리는 그의 눈에 분홍빛 양장에 구슬 백을 들고 하느작하느작 걸어가는 타다요시의 엄마가 보였다. 준식은 가쁜 숨을 추스르며 서서히 멈추었다. 무명적삼을 누덕누덕 기워 입은 초라한 엄마가 떠올랐다. 고개를 사방으로 휘둘러보니 아무도 안 보였다.

준식은 주머니 속의 돌을 움켜쥐었다. 순간, 절대로 일본 사람과 싸우거나 얽히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던 엄마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 울려왔다. 더 이상 우리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틈만 나면 노래를 하는 엄마였다.

준식은 터질 듯한 가슴을 주체할 수 없어 무슨 짓이든 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의 발은 무엇에 이끌리듯 증촌의 왕릉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준식이 학교를 다니기 전에는 명절이 아니어도 종종 아버지를 따라 가곤 했던 곳이었다.

(내일 또.....)



문경매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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