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시바둑연합회(회장 금동일-아마7단)는 5월 22일 오후 제일바둑교실에서 문경-상주 교류전을 갖고, 바둑으로 양 도시 간이 더 친해지는 행사를 가졌다. 한국기원 유경민 프로기사(五段)를 초청한 가운데 문경, 상주에서 각 9명씩 3판 양승제로 대국을 벌였다. 이에 앞서 오전에는 문경시내 기우회 교류전을 가졌다. 각 기우회별로 5명씩 출전하여 풀리그로 대회를 진행하였다. 이 자리에는 김동섭 아마대왕(7단)이 참관하였고, 유경민 프로기사는 다면기를 갖고 바둑애호가들에게 흥미를 더 주었다. 옛 기록에 따르면 신라와 당나라가 바둑을 교류하여 더 친해졌다고 한다. 이런 기록에 따라 바둑으로 사람간, 지역간, 나라간, 세대간 바둑을 두며 더욱 친해지고 있다. (신라와 당나라 간의 바둑 교류 기록)
서기 737년 신라 제33대 임금 성덕왕(聖德王)이 재위 36년 만에 세상을 떠나고 효성왕(孝成王)이 즉위했다. 서기 738년 신라 효성왕 2년 2월. 당(唐) 현종(玄宗)은 성덕왕이 별세했다는 소식을 듣고 오랫동안 애도하다가 좌찬 선대부 형숙(邢璹)을 파견해 홍려소경(외국 빈객을 접대하는 벼슬이름)의 자격으로 조문하게 했다.
형숙이 신라로 떠나려 할 때 당 현종은 자신이 직접 시와 서문을 짓고 태자 이하 백관으로 하여금 모두 시를 짓게 하여 보냈다.
또한 신라사람들이 바둑을 잘 두므로 솔부병조참군 양계응(楊季膺)을 부사로 삼았는데 신라의 고수들이 모두 양계응을 당하지 못했다. 이때 신라 효성왕은 당나라 사신 형숙 등에게 금은보화와 보약을 후하게 주었다. 4월에 당나라 사신 형숙이 노자도덕경(老子道德經)을 왕에게 바쳤다.
신라 성덕왕의 별세 소식을 듣고 당나라 현종이 오랫동안 슬퍼했던 것은 당시 신라와 당나라의 국교관계가 무척 친밀했으며 신라 성덕왕과 당 현종은 장장 24년간이나 서로 문물을 교류하면서 돈독한 우의를 맺어왔기 때문이다.
<삼국유사>의 이야기에서 신라 효성왕이 바둑을 좋아했고 그 시절에 이찬(신라시대 17등급의 품계 중 둘째의 위계)을 지냈으며 뒤이어 35대 경덕왕 시대에 상대등(上大等=영의정)을 지낸 신충(信忠)이 바둑고수였다는 사실이 나오지만 당나라 현종도 역시 바둑을 좋아했던 임금이었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바둑책 <망우청락집(忘憂淸樂集)>에는 당 명황(唐 明皇=당 현종 생전의 명칭. 현종은 시호)이 정관음(鄭觀音)을 불러 바둑을 두었다는 기록과 함께 대국기보가 전해오고 있으며, 현종 말년 안록산(安祿山)의 난리가 일어나 서촉(西蜀)으로 피난을 갈 때 그 시절 당나라 바둑명수였던 왕적신(王積薪)이 수행했다는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당 현종이 바둑을 좋아하는 임금이었고 신라가 바둑강국이었기에 중국에서 신라로 사신을 보낼 때 바둑고수 양계응을 부사로 삼은 것은 특별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