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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소향전 13
김경수
등록날짜 [ 2021-04-12 15:45:00 ]

[연재소설] 소향전 13
김경수

*** 유튜브에서 <소설 소향전>을 검색하시면 육성으로도 들을 수 있습니다. 신문연재와 회당 분량이 같지 않음을 참고바랍니다.

소향은 창피하고 피곤하고 여기까지 어찌 오게 됐는지도 또렷이 생각이 정리되지 않을 정도로 어지럽다. 엄마한테 거짓말하고, 대폿집에도 거짓말하고, 비록 살아갈 앞길이 캄캄한 엄마와 동생들 때문에 열여덟 처녀가 생각할 수 없는 일에 따라 오긴 왔지만 네 마지기니 다섯 마지기니 하는 흥정을 자기가 하고 있는 것이 처참한 참이다.

고개를 밑으로 깔고 잠시 소향은 눈을 감는다. 감은 눈 속에는 함씨네집 못된 노인들과 비정한 지서장과 여곽주인과 그리고 그 뒤에 있던 여러 사람들의 눈들이 보인다.

서로 어색함이 흐르고 정적이 누를 때 큰아지매는 속으로 역시 천한 것들은 어쩔 수 없구나 하고 자기가 바라는 일이 허사로 끝날 것 같은 마음에 싸인다.

-아지매요, 지는예, 아부지가 사변통에 돌아가시고 동생이 넷이나 있는데 엄마하고 지하고 아무리 일을 해도 묵고 살기가 정말로 힘듭니더. 아부지가 무신 빨갱이 했다고 일도 시키주도 안하고 한 일도 품값도 안줍니더. 논도 밭도 없고 동생들은 공부를 시키야 되고 묵고 살아야도 되는데 엄마 혼자서는 정말로 안됩니더. 캐서, 지가 보살님 말씸대로 할라꼬 오긴 왔지만예. 다섯 마지기는 있어야 하다못해 어물전에 점방이라도 하나 냅니더. 지가 챙피하고 고생하는 건 괜찬심더. 하지만 점방 하나 값은 있어야 되예-

비록 서두도 없고 오밀조밀한 논리는 아니지만 왜 논 다섯 마지기가 필요한지를 말하는 소향이다. 처녀의 입으로 자기 몸뚱아리 흥정 나누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 유일한 설명이지만 그것은 소향에게는 그저 감추는 것 없는 사실나열이었다.

얘기를 듣던 큰아지매는 무당을 향해 묻는다.
-이 아이가 여기 오는 걸 엄마가 허락했습니까?-
-아입니더! 야 엄마는 모립니더! 야가 그리 해야 된다캐서! 컥컥!-
물그릇을 들고 한 모금 더 마시면서 무당은 들숨과 물이 얽혀 체하듯 컥컥거리며 답한다.

-니가 이런 일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부모님도 모르게 여길 왔냐?-
-엄마는예. 물론 난리를 칠 거라예. 케도 지금으로서 제가 동생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예. 그저 품 팔고 일하는 것 빼고는예-
-니가 부모님의 동의를 가져오지 않으면 내가 너한테 더 이상 얘기할 수 없다-
치마폭을 감싸서 발쪽으로 당기며 큰아지매는 단호히 말한다.

피곤하고 배도 고픈 무당은 갑자기 정신이 확 든다. 여비도 들여서 천리 길을 왔는데 자기가 막살 놓기 전에 딴사람이 막살 놓고 있는 것이렷다?

-아지매! 딴은 야 어마이도 내게 듣긴 들었지예. 알고는 있슴니더. 카라고 한 건 아니지만. 어느 어마이가 다 큰 지 딸년을 여 있소 하고 씨받이로 내놓을란교?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알고도 모린 척하고 지낼 일이고 또 그 칸다케도 내가 다 알아서 할 일 아입니꺼?-
거래가 깨질 것이 염려가 되는지 대접 못 받아 성났던 얼굴이 확 사라졌다.

소향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일을 엉성하게 만들어 놓고 천리 길을 재촉한 무당이 밉고 그 뒤를 졸졸 따라온 자신이 부끄럽다.

갑자기 벌떡 일어서며
-가입시더. 보살님! 이기 뭡니꺼? 여비가 얼만데-

소향이 방문을 열고 나서자 무당은 황당해 하며 소향의 치마를 잡고 당긴다.
-, ! 앉아봐라. 쉽게 올 길이 아이다 아이가? 그라고 아지매요! 이기 뭡니꺼? 사전에 아 어마이 하고 같이 오라고 하지도 않고 이제 와서 어마이 들먹거리다이 말이 됩니꺼?-
아예 손까지 앞으로 내밀고 삿대질에 가까운 시늉이다.

-집안에 시끄러운 소리가 생기는 것은 안 되기 때문입니다. 아까는 야 엄마가 모른다고 했으니 내가 한말이지요. 좋습니다. 보살님. 보살님이 그리 말하고 또 소향이 너가 철없이 내린 결정이 아니라니 그럼 다시 내가 말한다-
소향과 무당을 번갈아 보면서 입을 한번 다신 후 계속한다.

-니가 아들을 낳아주면……. 좋다! 내가 다섯 마지기 논 값을 주겠다-
무당은 속으로 후 하고 숨을 쉰다.
그러나 아까 나가려고 일어섰던 소향은 눈을 내리깔고 여전히 서있다. 그리고 조용히 앉는다.
-하늘이 하는 일에 지가 아들을 놓을지 딸을 놓을지 어떻게 압니꺼? 그럼 지가 딸을 놓으면 우짭니꺼?-
아무도 할 말이 없다. 물론 순리를 모를 큰아지매는 아니지만 막상 어린 것이 다그치며 사례를 말하자 생각할 여유가 필요한 참이다.

-물론 딸이라도 이집의 딸이 된다. 너하고는 상관없이-
잘라서 대답해준다.
-그라모 지는 논 몇 마지기를 받는데에?-
당돌하게 묻는다.
-어린 것이 돈에 환장을 했나?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또박또박 돈만 입에 올리는구나!-
미처 예상 못한 부분까지 물어오는 소향의 질문에 적이 당황스러운 큰아지매는 화가 난 듯 목소리를 올려 말한다.

소향은 아예 정면으로 큰아지매를 보며
-지가 부끄럽다면 아지매는 안 부끄럽습니꺼?-
무당은 눈만 크게 뜬 채 말을 못하고 큰아지매도 매 같은 눈을 하지만 입에는 할 말을 준비하지 못한다.

순간도 기다리기 싫은 듯 소향은 계속 말을 한다.
-지는 여 오민서 죄를 짓거나 나쁜 짓을 한다고는 생각 안하고 왔심더. 오직 우리 집 식구들 생각만 하고 왔심니더. 쿤데 아지매는 지 보고 우째 부끄럽다고 하십니꺼?-

기가 찰 노릇이다. 무당은 몇 번 소향에게 당해본 적은 있어서 놀랄 만한 소리는 아니지만 큰아지매는 그저 기가 막힌다.

한참 자기를 응시하는 소향의 눈길을 맞받아치다가
-그래, 내 말이 좀 지나친 건 사실이다. 부끄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내놓고 흥정하는 것이 사납다는 말이다-
입을 다물며 이런 일에 익숙지 못한 큰아지매는 당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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