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문화
문경시 개성고씨 치당공파 고택 문화재 지정
문경매일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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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시 문화재 76점으로 늘어

문경시에 문화재가 늘었다. 산양면 송죽리에 있는 ‘문경 송죽리 개성고씨 가옥(聞慶 松竹里 開城高氏 家屋)’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89호로 지정된 것이다.
문경에 개성고씨(開城高氏)가 처음 입향한 것은 임진왜란 전 예문관 직제학을 지낸 고사원(高士原)이며 여기에서 갈라져 나온 파들이 문경의 각 지역에 분가하여 살고 있다. 치당공파(痴堂公派)는 가장 큰 집으로 송죽리에 터를 잡았다. 이 집은 치당공 고완(高浣, 1863~1953)과 그의 아들 고석림(高碩林)이 1933년에 건립하였다.
산자락 끝에 남북으로 길게 다듬은 터의 대문채를 들어서면 마주하는 사랑채와 그 뒤편에 놓인 튼 ˥형의 안채․고방채가 튼 ㄇ형을 이루고 있다. 안채가 남향한 사랑채와 직각으로 만나면서 동향으로 앉혀 있다. 일반적으로 사랑채와 안채가 직․병렬로 배치되는 모습과 다르다. 사랑채 앞 왼쪽 대문채 오른쪽의 모서리부와 고방채 뒤쪽에 측간을 두었다. 집 주위에는 블록 담장을 쌓고, 사랑채의 배면과 고방채 좌․우측에는 내외담장을 쌓아서 공간을 세 영역으로 구분했다.

배치구성을 보면 공간적․기능적으로 전통적인 유교 관습에 따른 남녀 구분이 지켜지면서도 안채로의 출입이 사랑채를 지나야 되는 등의 기본 틀이 점차 약해지고 있으며, 다음은 안채와 사랑채의 평면이 전․후퇴가 발달하고 측면에 툇간을 두고 있다.
특히 안채는 근대 주생활상에 의한 실 면적 확대 요구를 수용하여 규모가 증대되면서 평면이 종횡으로 분할되어 겹집화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머름 없는 키 큰 창호와 고창 및 환기창, 쪽소로 장식과 종이반자 등도 19세기 후반 근대 가옥에서 주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이 가옥은 이런 근대 한옥의 두드러진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으며, 또 근대기 역사와 문화의 변동을 살펴 볼 수 있는 비교적 보존이 잘 된 점이 인정되었다. 문경시는 이로써 모두 76점의 문화재를 보유하게 되었다.
문경매일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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