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사람] 김명래 치과의원 원장
헬스조선, 대학병원 교수 출신 개원 명의 2탄 20명에 뽑혀
[문경사람]김명래 치과의원 원장
헬스조선,대학병원 교수 출신 개원 명의2탄20명에 뽑혀

한국문인협회 문경지부 일을 보고 있는 기자는 같이 활동을 하고 있는 점촌중학교 최우창 선생님으로부터 인물정보를 받았다.
최 선생님은 치아시술을 위해 딸이 근무하는 서울의 이대목동병원을 다니는데,담당의사가 문경서 왔다고 하니, ‘김명래 선생님을 아시느냐?’고 묻더란다.자기의 은사신데,우리나라 치과계에서 아주 손꼽히는 분이라면서.....
최 선생님은 어디 가서 그저‘문경’, ‘문경사람’소리만 들어도 기분 좋은데,우리나라 치과계에서 손꼽히는 분이 문경사람이라고 하니,가슴이 설레기까지 했다며,혹시 기자인 내가 그 분을 아는지 물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기자는 그분에 대해서 아는 정보가 없었다.그러자 최 선생님은 관련 정보를 인터넷으로 검색해 이메일을 보내오는 등,이분을‘문경매일신문’에 소개하면 좋겠다는 압력 아닌 압력을 가해 왔다.
그런 연유로 김명래 박사를 인터넷으로 검색해‘김명래 치과의원’을 찾았다.그리고 이메일을 보냈다.그랬더니 박사님은 바로 기자의 질문에 답해 주셨고,관심을 가져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셨다.
이 기사는 이런 바탕 위에서 나온 것이다.
김명래 원장은1948년 무자년 호계면 견탄2리 태봉,지금 국군체육부대가 있는 마을에서 지금은 돌아가신 아버지 수산 김남형 선생과 지금도 살아 계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 마을은 김씨,남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 현재도 이곳에는 김 원장의4촌이 살고 있다.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란 김 원장은 견탄리에 있다가 후에 신기초등학교로 통합된 가탄국민학교를3학년까지 다녔다.그리고 신기초등학교를3회 졸업했다.그 후 문경중학교를1963년13회로 졸업하고,서울 보성고등학교로 가면서 출향했다.
그리고 공부를 잘해 금의(錦衣)를 입었다.누구나 부러워하는 서울대 치과대학에 입학해 치과의사가 됐다.그리고 쭉 승승장구.연세대 치의학박사,이대목동병원 교수,이화여대임상치의학대학원장,대한악안면성형재건외과학회장,대한구강악안면임플란트학회장,대한구강악안면외과학술대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신망을 쌓아 대한치과의사협회 표창,보건복지부장관 표창,옥조근정훈장 등을 수상했다.
김 원장은 치과의사를 하면서 그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많은 연구와 저술로 실력을 드러냈다.원인과 치료가 불명확한‘드라이소켓(치조골염·건성치조와)’의 발생과 치유기전을 알아내 치료법을 개발한 것을 비롯해,과거 무조건 뽑아버리던 사랑니를 다시 옮겨 심어 사용하는 치아이식도 김 원장이 국내 최초 보고했다.또 골유착성 임플란트(잇몸뼈와 고정이 되는 임플란트로,잇몸뼈가 부족해도 사용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를 국내에 최초로 소개,도입하기도 했다.

헬스 조선에 따르면 김 원장은14권의 치의학교과서와 전공서를 편찬했고,연구 논문은160편이 넘는다.
또 이대목동병원에 재직할 당시, 20여 명의 사람이 진료실 입구에서 합동으로 김 원장에게 절을 한 사건이 있는데, 20년 전 김 원장에게 구강암 치료를 받은 환자가 가족과 손자들을 데리고 와 여태 잘 지내고 있다고 감사의 절을 했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말로 그만 둔 이대목동병원에서 김 원장은 치과학교실 교수로 최초의 정년퇴임자로 기록됐으며, 40년 공직생활을 명예롭게 마무리하고,올해 영등포에‘김명래 치과’를 개원했다.
치과신문은‘김명래 교수의 발자취는 크게3가지’라며,첫 번째는 의과대학병원 치과 발전의 큰 축이었다는 점,두 번째는 국내 임플란트 대중화의 선두주자 역할을 했다는 것.그리고 마지막은 치과의사 전문의제도 실시를 주도했던 인물 중 한 명이라는 것이다.
김 원장은 최초의 국산 임플란트를 일반 환자도 아닌 자신의 노모에게 직접 시술한 일화는 우리나라 치과계의 돋보이는 스토리텔링이 되고 있다.
김 원장은“개원의로 얼마나 오래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이제라도 나만의 진료를 하면서 치과의사로서의 인생을 마감하고 싶다”고 했다.

김 원장은 고향,문경과도 연을 끈끈히 이어 살고 있었다. 1년에1월 설, 4월 성묘, 6월 아버님 기일, 6월 신기초등학교 동창회 체육대회, 9월 추석, 10월 산행 또는 골프를 위해5~6회 꼭 문경을 다녀간다.
그런 김 원장께 고향에 대한 추억이 무엇인가 여쭈었더니“견탄에서 신기로 학교를다녔는데,그때 다리가 없어서 아침 등교 길에 발가벗고 영강을 건너다닌 기 생생히 떠오른다.”고 했다.그리고“학교 갔다 와서 소 풀 띠끼고 소(沼)에서 미역 감고,겨울에는 이곳 견탄 앞 영강에서 썰매 타고 놀던 일이 아름답게 생각난다.”고 말했다.
김 원장의 외가는 문경읍 상초리,지금은KBS세트장이 들어선 용사골.사라진 마을에 대한 회한이 선하단다.문경,그것도 영강에서 나는 골뱅이국을 좋아하고,바둑과 골프를 즐기는 그는2000년부터2002년까지3년간 신기초등학교 총동창회장으로 헌신하기도 했다.
그런 만큼 김 원장은“문경을 사랑한다.”고,묻지도 않은 답변을 해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