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출신 김만기 장군 별세
문경출신 김만기 장군 별세

문경시 호계면 가도리 출신으로 육군 헌병감을 거쳐 소장으로 예편한 김만기(金滿基, 1929~2021)장군이8월22일 별세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져 많은 문경시민들이 애도하고 있다.
고령인데도 건강을 유지하며 문경과 서울을 오고가며 생활했던 김만기 장군은 권대진 전 문경시노인회장과 호계초등학교 동기동창이다.
권대진 회장에 따르면 김만기 장군은 호계초등학교4학년 때 경찰관을 하시던 아버지 임지를 따라 봉화로 전학했고,이후 경북중학교,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한 수재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 초등학교 교사임용시험에 합격해 호계 부천초등학교 교사로 잠시 생활하다가 헌병에 입대해 사병에서부터 장군에 오른 입지전을 세웠다.
다음은 노인옥 예비역 대령이 조선일보에 기고한 내용을 여기 싣는다.
[조선일보 발언대]강직하고 청빈한 삶을 산 노병(老兵)이 남긴 교훈
노인옥 예비역 대령
지난달22일 별세한 고(故)김만기 장군의 강직하고 청빈한 삶이 후배 군인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다.
5개월 전 집에서 넘어져 고관절 골절로 투병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전우들과 문병을 갔다가 충격을 받았다.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산꼭대기에 자리한20평 남짓한 집인데,그곳에서50년 넘게 살고 있다고 했다.집 앞까지 승용차가 진입하지 못해50~60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평소 고령에도 반듯한 정장 차림에 단장(短杖-짧은 지팡이)을 집고 각종 행사에 참석해 위엄 있는 덕담으로 좌중을 압도했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이렇게 초라한 집에서 거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 김만기 장군은6.25전쟁 중이던1951년1월 육군 소위로 임관한 후30여 년간 월남전(베트남전)백마부대 헌병참모,수도경비사 헌병단장,육군 헌병감 등을 거쳐 소장으로 예편한 후 감사원 사무총장 등을 지냈다.
장군은 현역 시절 청렴한 삶으로 많은 일화를 남겼다.
1967년 월남전 백마부대 헌병참모직을 마치고 귀국할 때 모든 장병들이 이른바‘귀국 박스’를 챙겼다.박스에 담긴 것들은 아무 규제나 관세 없이 특별히 통과시켜주었기 때문에 훗날 재산 증식 수단으로 삼은 병사들도 있었다.
하지만 장군은 세면도구 주머니 하나만 달랑 들고 귀국했다.이 이야기는 지금도 군인 사회에 전설처럼 남아 있다.
백마부대 헌병참모 시절에는 매월 지급되는 활동비50달러를 부하4명에게10달러씩 나눠주고 본인도 똑같이10달러만 사용했다.
그는 여군 헌병대와 특별경호대를 창설하는 업적도 남겼다.
투철한 군인 정신이 사라지고 안보가 흔들린다는 우려가 나오는 요즘,장군의 강직하고 청렴결백한 삶을 후배 군인들의 귀감으로 삼아야 한다.
문경매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