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출신 정상미 시인, 첫 시집 ‘안개의 공식’ 출간
문경출신 정상미 시인,첫 시집‘안개의 공식’출간

202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데뷔한 문경출신 정상미 시인이2022년 서울문화재단 첫 책 발간 지원 사업에 선정돼 시집‘안개의 공식’을10월25일자로 펴냈다.
이 시집은‘책만드는집’에서4부로 나눠60편의 시와 이송희 시인의 해설을 수록해119쪽,정가1만원으로 발간했다.
시집에는 문단 등단작품인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작‘너라는 비밀번호’를 비롯해 그동안 각종 문예지에 발표한 작품과 처음 선보이는 작품들이 들어 있다.

다음은 시집에 있는‘촉 밝은 전구’전문과 이송희 시인이 해설한 내용이다.
수직을 잃은 엄마 긁는 병이 생겼나
머릿속 알전구 희미하게 깜빡일 때
쟁여둔 설움은 터져
피가 나야 멈춘다
장갑을 끼워두면 물어뜯어 벗겨내고
무엇을 들려줘도 금세 던져버린다
온밤 내
튕겨난 잠에 말들이 날뛰는 방
궁리 끝에 지폐 모아 식판에 올려주면
고요해진 얼굴로 하나하나 집어 든다
사임당 이불 속으로
맨 먼저 모셔두고
대왕님 율곡 선생 퇴계 선생 줄 세운다
이불 아래 쌓아둔 단단한 지폐의 성벽
엄마를
지키고 있는
강력한 수문장이다
수직을 잃은 엄마는 똑바로 당당하게 서 있지 못한다.알전구 희미해지듯 깜빡깜빡 잘 잊어버리기 때문이다.그런 엄마에게는 자기 몸을 긁는 병이 있다.주체의 엄마는 치매로 지나 온 삶의 기억을 거의 잃어버린 듯하다. “장갑을 끼워두면 물어뜯어 벗겨내고/무엇을 들려줘도 금세 던져버”리는 엄마의 행동은 치매에서 비롯된 것인데,아이러니한 것은 그럼에도“지폐 모아 식판에 올려주면/고요해진 얼굴로 하나하나 집어 든다”는 것이다.돈은 치매가 걸린 그녀에게도 치유와 평화를 준다.모든 기억을 다 잃어도 돈에 대한 기억은 생생하게 남는다.
유일하게 엄마를 잠재울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돈이라는 것은 우리가 자본주의의 노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그녀는 죽는 그 순간까지 돈을 놓지 못한다.그것은“엄마를/지키고 있는/강력한 수문장”이라고 할 수 있다.제목인‘촉 밝은 전구’는 의식이 희미하게 꺼져가는 순간에도 돈에는 촉이 밝다는 웃기고 슬픈 현실을 담고 있다.슬픔을 웃음으로 승화 시키는 해학과 아름다움이야말로 주체를 버티게 하는 힘인지도 모른다.
문경매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