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문화

동곡 신태영 선생 훈학불망비 제막

이민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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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천의 문정(門庭)을 밝힌 스승의 뜻, 제자들의 이름으로 다시 세우다”
동곡 신태영 선생 훈학불망비 제막
동곡 신태영 선생 훈학불망비 제막

문경시 문경읍 평천리 주흘산 아래 초여름 햇살이 내려앉은 30일 오전, 마을 어귀에는 오랜 세월 제자들을 가르쳐 온 한 선비의 학덕을 기리는 뜻깊은 제막식이 열렸다.

 

동곡(東谷) 신태영(申泰英) 선생의 훈학불망비(訓學不忘碑)가 문도(門徒) 73명의 이름으로 세워지며, 평천리 마을은 스승의 가르침과 향촌 교육의 전통을 되새기는 분위기에 휩싸였다.

 

이날 세워진 비석에는 처사동곡신선생훈학불망비(處士東谷申先生訓學不忘碑)’라는 비명이 새겨졌으며, 1901년 연일 우복리에서 태어나 9세 때 평천리에 정착해 평생 후학 양성과 향촌 교화에 힘쓴 선생의 생애와 학덕이 음기(陰記)에 담겼다. 

동곡 신태영 선생 훈학불망비 제막
동곡 신태영 선생 훈학불망비 제막

행사는 제1부 고유 추모제(告由追慕祭), 2부 제막식, 3부 기념행사 순으로 진행됐다.

 

추모제에서는 유학 풍산후인 류시호 선생이 직접 고유축문을 읽으며 동곡 선생의 삶과 학문, 덕행을 기렸다.

 

축문이 낭독되자 행사장은 숙연한 분위기로 가득 찼다. “文章卓犖 行儀俊秀(문장이 뛰어나고 거동이 준수하였으며), 講學經史 門庭常滿(경사를 강학하니 문정에 항상 사람들이 가득했다)”는 대목에서는 생전 평천리 사랑채에 모여들던 제자들과 유생들의 모습이 떠오르듯 참석자들의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弟子訓誨 其恩如海(제자들을 가르친 그 은혜가 바다와 같도다)”라는 구절에서는 눈시울을 붉히는 문도들도 보였다. 

동곡 신태영 선생 훈학불망비 제막
동곡 신태영 선생 훈학불망비 제막

이날 비석은 1958년 결성된 동곡신선생 훈학동문계의 뜻에 따라 제자 73명이 연명으로 세운 것이다. 동문계는 선생의 가르침을 잊지 않기 위해 수십 년간 이어져 왔으며, 이날 마침내 후학들의 오랜 염원을 담은 비석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음기에 따르면 동곡 선생은 안동인 번와 김용규 선생 문하에서 경사(經史)를 깊이 탐구했다. 학문은 정밀하고 깊었으며 문장은 아정하고 강건해 일찍부터 주변의 추중을 받았다고 기록돼 있다.

 

특히 말년에는 인근의 젊은 유생과 수재들이 끊임없이 찾아와 학문과 도를 물었고, 선생은 조금도 게으름 없이 직접 가르침을 베풀었다고 전해진다. 

동곡 신태영 선생 훈학불망비 제막
동곡 신태영 선생 훈학불망비 제막

마을 주민들은 예전에는 집집마다 한학을 배우던 시절이 있었는데, 동곡 선생 사랑방이 바로 그 중심이었다고 회고했다.

 

제막식은 황준범 문경향교 장의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신현조 주손의 경과보고를 시작으로 신종호 문도 대표 인사, 김제윤 문경문화원장과 이용원 문경향교 전교의 축사가 이어졌다. 

동곡 신태영 선생 훈학불망비 제막
동곡 신태영 선생 훈학불망비 제막

김제윤 원장은 축사에서 이번 훈학불망비는 단순히 한 분의 선비를 기리는 차원을 넘어, 문경 향촌사회가 이어온 스승 공경의 정신과 교육의 전통을 후세에 전하는 상징이라며 평천리의 아름다운 유풍이 오래도록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이용원 전교는 예전 향촌 사회는 훌륭한 선비 한 분이 마을의 정신적 중심 역할을 했다오늘 제막된 비석은 문경 유학의 맥을 잇는 귀중한 문화적 자산이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동곡 신태영 선생 훈학불망비 제막
동곡 신태영 선생 훈학불망비 제막

이날 행사에서는 금중현 전 상주향교 전교가 비문 찬창(讚唱)을 맡아 음기의 내용을 읊조리듯 낭독하며 현장의 품격을 더했다. 이어 차자인 신정 선생의 자손 인사와 기념촬영이 이어지며 행사는 마무리됐다.

 

비석 앞에 모인 문도들은 하나둘 비문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스승의 이름을 다시 새겼다. 누군가는 어린 시절 서당에서 들었던 훈계를 떠올렸고, 또 다른 이는 이제야 제대로 은혜를 갚은 것 같다며 깊은 감회를 드러냈다. 

동곡 신태영 선생 훈학불망비 제막
동곡 신태영 선생 훈학불망비 제막

평천리 주흘산 아래로 초여름 바람이 불어오던 이날, 후학들은 오래전 한 선비가 남긴 가르침을 다시 마음속에 새기고 있었다.

 

 

문경매일신문

이민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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