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읍, 설에 주흘산 신당제례 봉행

문경읍(읍장 김재선)은 설날 자정에 문경읍 상리 주흘산 신당(문경읍 상리 186)에서 주민들의 풍요와 화합을 기원하는 제례를 봉행했다.
주흘산 상리신당제례는 문경에서 가장 서열 높은 읍제사(邑祭祀)로서, 이 제사를 올린 후에야 각 마을의 제사를 지낼 수 있었다.
이날 제례에는 김재선 문경읍장, 황재용 시의원, 김태용 주민자치위원장, 이경희 이장자치회장, 전강문 상리1리 이장, 마을 주민 20여명이 참석해 주민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했다.
제례는 전통 의복을 갖춰 입고 김재선 읍장이 초헌, 황재용 시의원이 아헌, 김태용 주민자치위원장이 종헌했으며, 전강문 상리1리 이장이 문경읍 공동체 각계각층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축문을 낭독했다.
김재선 문경읍장은 “의미 있는 읍제사 의식에 참석하고 이를 진행하며 우리 전통과 문화를 더 깊게 이해하는 시간이 되었으며, 병오년 한해 문경읍 주민들 모두의 풍요와 무사안녕을 기원한다”고 말했다.

[뉴스해설] 주흘산 소사(小祀)와 읍제사(邑祭祀)
‘조선왕조실록’ 태종 14년(1414) 8월에 나라에서는 주흘산을 소사(小祀)로 삼았고, 성종 25년(1494)에 좌랑 하윤(河潤)이 직접 임금의 쾌차를 비는 제를 올리기 위해 주흘산사(신당)에 왔다.
국가에서 지내는 제사는 크게 대사와 중사 그리고 소사로 나누어지는데, 대사는 종묘사직에, 중사는 풍운뇌우(風雲雷雨)와 산천(山川)에 소사는 명산대천(名山大川)에 나라의 안녕과 백성의 평안을 위해 올리는 제사이다.
‘세종실록지리지’(1454년)에 주흘산 소사의 기능이 구체적으로 실려 있다. “주흘산(主屹山)은 현의 북쪽에 있다. 매년 봄과 가을에 나라에서 향과 축문을 내려 소사(小祀)를 지냈다”라고 기록돼 있다.
조선 시대에 소사를 올릴 수 있었던 곳은 강원도의 치악산(雉嶽山), 충청도의 계룡산(鷄龍山)과 죽령산(竹嶺山), 경상도에는 주흘산(主屹山)과 우불산(于弗山), 전라도에는 전주 성황(全州 城隍)과 나주의 금성산(錦城山). 이곳들이 소사를 지내는 곳으로 정해진 곳이다.

선조실록 174권, 선조 37(1604)년 5월 26일의 기록에도 이러한 내용이 실려 있다. 경상도 관찰사 이시발이 장계하기를, “한재가 너무 심합니다. 가야산·우불산·주흘산 등처에 기우제를 지낼 향축과 예폐를 내려보내소서 하였는데, 예조에 계하하였다”
정월이 되면 산신, 지신, 천신 등 마을마다 전해져 내려오는 고유한 풍습에 따라 주민들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각각 제를 올리고 있다. 문명과 종교의 발달에 따라 그리고 문화의 변화 패턴에 따라 없어지거나 간소화된 곳도 많이 있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신당을 통해 제를 올려야만 평안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곳이 많이 있다.
문경읍 상리에 있는 신당(성황사)은 성격이 다른 제사 공간이라 할 수 있다. 과거에는 반드시 이곳에서 제를 먼저 지내야만 문경 읍치의 각 마을이 모든 신당에서 비로소 제를 올릴 수 있었다. 이는 주민들은 이 제사가 ‘읍제사(邑祭祀)’로서 가장 서열이 높으므로 이 제사를 올린 연후에야 각 마을의 제사를 올릴 수 있다고 믿었다. 지난 세기 동안 이 제사를 주관해온 상리 주민들은 신당 제사가 상리마을의 제사로 인식하지 않고 문경 고을의 제사로 인식했으며, 자기 마을의 제사는 신당 제사를 마친 다음에 별도로, 마을 앞에 있던 고목(古木)에 주과포혜를 차려 놓고 제를 올렸다.
상리 신당은 문경읍 상리 주흘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문경 현감이 있었던 관아 터에서 1km 남짓 거리에 있다. 문경 관아 터는 문경읍 상리 문경서중학교 자리다. 신당은 정면 세 칸, 측면 1칸, 팔작기와지붕으로 면적은 4.5평 정도다.
문경매일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