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박열 의사 동지 가네코후미코 여사 다실 개소
교육문화

박열 의사 동지 가네코후미코 여사 다실 개소

이민숙 기자
입력
가네코후미코(金子文子) 선양사업회 이규상 회장(왼쪽)과 박열의사기념사업회 서원 이사장(오른쪽 두번째)이 다실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박열의사기념사업회 제공
가네코후미코(金子文子) 선양사업회 이규상 회장(왼쪽)과 박열의사기념사업회 서원 이사장(오른쪽 두번째)이 다실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박열의사기념사업회 제공

문경 출신 박열 의사의 사상적 동지이자 부인이며, 독립운동가인 가네코후미코(金子文子) 여사를 기리는 가네코후미코 다실(사랑방)’5일 오후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가네코후미코 선양사업회(회장 이규상) 건물 내에 문을 열었다. 

가네코후미코(金子文子) 다실 개소식 모습. /박열의사기념사업회 제공
가네코후미코(金子文子) 다실 개소식 모습. /박열의사기념사업회 제공

이날 개소식에는 최민호 세종특별자치시장, 박열의사기념사업회 서원 이사장과 이사, 가네코후미코 여사 독립정신을 연구하는 국민문화연구소 김창덕 회장과 회원, 가네코후미코 선양사업회 관계자 등 50여 명이 참석해 고인의 약력 보고, 독립운동 활동 소개, 다실 개소의 의미와 향후 운영계획 설명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가네코후미코(金子文子) 다실에 전시돼 있는 가네코후미코(金子文子) 독립운동가 자료. /박열의사기념사업회 제공
가네코후미코(金子文子) 다실에 전시돼 있는 가네코후미코(金子文子) 독립운동가 자료. /박열의사기념사업회 제공

이규상 선양사업회장이 사비를 출연해 만든 가네코후미코 다실은 선양사업회 1층에 자리하고 있으며, 90㎡에 좌석 30석으로, 가네코후미코 여사의 한국 생활 7(1912~1919)의 흔적을 사진으로 전시해 그 의미를 더하고 있다.

 

가네코후미코 여사는 1903년 일본 요코하마에서 태어났으나 가정형편이 어려워 세종시 부강면 고모 댁에서 어렵게 자랐으며, 부강심상소학교와 부강공립고등소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박열 의사를 만났다.

 

가네코후미코 여사는 박열 의사의 사상과 독립을 위한 노력에 깊은 감명을 받고 일본인임에도 우리나라 독립운동에 동참했으며, 1923년 관동대지진 때 일본 천왕 암살 기도 대역사건에 연루돼 박열 의사와 함께 사형을 선고받은 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그 후 1926323일 옥중에서 박열 의사와 혼인신고를 했으나, 192672323세의 젊은 나이에 감옥에서 의문의 죽음으로 삶을 마감했다.

 

우리 정부는 2018년 가네코후미코 여사에게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가네코후미코(金子文子) 독립운동가 사진 앞에 선 이규상 회장과 서원 이사장. /박열의사기념사업회 제공
가네코후미코(金子文子) 독립운동가 사진 앞에 선 이규상 회장과 서원 이사장. /박열의사기념사업회 제공

이규상 가네코후미코 선양사업회장은 올해 광복 80주년과 내년도 가네코후미코 여사 서거 100주기를 앞두고 한국 생활 7년을 이곳 세종 부강에서 보낸 여사님의 흔적을 재조명 하는 공간을 마련한 것은 한일 관계에서도 미래지향적 발전 관계로 이어지는 마중물 역할을 하는 사랑방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소박하게 꾸몄다고 말했다.

 

박열의사기념사업회 서원 이사장은 지난 422일 가네코후미코 선양사업회와 업무협약을 맺은 후 첫 결실로, 매우 기쁘게 생각하며 내년도 가네코후미코 여사 100주기 추모 사업을 내실 있게 준비하여 여사님의 독립 정신의 깊은 뜻을 기리는데 소홀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 할 것이라고 밝혔다.

 

관련 문의는 박열의사기념관 홈페이지나 전화 054-572-3396~7로 알아볼 수 있다.

 

 

문경매일신문

이민숙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