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5327명 시대, 문경 전체가 배움터 된다
학생 수 감소 위기 속 ‘한 아이도 놓치지 않는 교육’으로 농촌교육 새 모델 모색

학생 5327명 시대. 학령인구 감소는 문경교육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그러나 문경교육은 학생이 줄어드는 만큼 학교를 줄이는 데 머무르지 않고, 오히려 학교 담장을 넘어 문경이라는 지역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배움터로 만드는 방향으로 교육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
경상북도문경교육지원청은 지난 2일 교육지원청 대회의실에서 지역 언론인 초청 간담회를 열고 2026년 주요 교육정책과 성과를 설명했다. 이날 제시된 문경교육의 방향은 슬로건 ‘문경을 담고 세계를 품다’, 비전 ‘미래를 여는 따뜻한 문경교육’으로 압축된다.
올해 9월 1일 기준 문경지역 학생은 모두 5327명이다. 유치원 376명, 초등학생 1957명, 중학생 1286명, 고등학생 1318명, 각종학교 390명이다. 공립학교 30개교와 사립학교 5개교가 이들을 품고 있다.
◇문경의 자연과 산업현장이 ‘교실’로
문경교육 변화의 핵심은 아이들의 배움터를 교실 밖으로 확장하는 데 있다. 교육발전특구 사업으로 추진하는 ‘문경 에듀-드림 버스’가 대표적이다. 학교와 지역사회, 교육지원청을 연결해 문경의 자연과 산업·문화자원을 교육과정에 끌어들이는 사업이다.
상반기에는 관내 유·초·중·고 학생 1060명이 돌리네 습지를 찾아 생태를 배우고 친환경 생활용품 만들기 등을 체험했다. 하반기에는 1100명의 학생이 가은 에코월드를 활용해 도자기와 청사초롱을 만들고 문경 석탄산업의 역사를 배운다.
아이들이 자신이 사는 고장의 자연과 역사를 직접 체험하면서 ‘문경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배우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문화예술도 학교와 지역을 잇는 중요한 연결고리다. 올해 지역연계 학교예술교육은 음악놀이와 바이올린, 문경아리랑, 난타, 공예, 인형극 등으로 다양화됐다. 유·초·중학생과 학부모, 교원에게 모두 65회, 2980명의 문화예술 체험과 공연 관람 기회를 제공했다.
2024년 창단한 문경학생오케스트라 ‘주흘’도 학교 간 경계를 허물고 있다. 초등학교 관현악단에서 활동했던 학생들이 중·고등학교 진학 뒤에도 음악을 이어갈 수 있도록 만든 풀 오케스트라다. 학교와 학생, 교사뿐 아니라 문경시립합창단 등 지역 예술단체와도 협연하며 지역 문화공동체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폐교도 다시 아이들의 배움터로

학생 감소로 문을 닫은 학교 역시 교육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배움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2025년 폐교된 가은초 희양분교장은 ‘특색오미마을학교’로 변신했다. 가족캠핑을 비롯해 자연·생태체험, 지역 역사·문화 탐방, 어린이 시인학교, 별자리캠프 등을 운영하며 학생과 가족, 주민이 함께 이용하는 마을교육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는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폐교를 단순한 유휴재산으로 바라보지 않고 지역의 자연·역사·문화자원과 결합한 새로운 교육공간으로 되살리는 시도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문경과 전남 무안의 교육교류 역시 지역의 경계를 뛰어넘었다. 교육 관계자 교류에 이어 올해는 초·중학생 50명이 학생자치 리더십 캠프를 함께하며 미래세대까지 교류의 폭을 넓혔다.
◇‘한 명의 학생도 놓치지 않는다’
배움터의 외연을 넓히는 것과 함께 교육 안전망은 더욱 촘촘하게 짜고 있다. 학생맞춤통합지원센터 ‘다운’은 학교생활에서 복합적인 어려움을 겪는 학생을 조기에 찾아 학습·복지·건강·진로·상담 등을 통합 지원한다. 문경시와 경찰서, 복지관, 상담기관 등 지역사회 25개 기관도 이 안전망에 참여하고 있다.
기초학력거점지원센터에서는 학습지원이 필요한 학생에게 학습코칭과 치료지원 등을 제공한다. Wee센터는 학교 순회상담과 심리검사, 학업중단 예방에서 위기학생의 심리평가·상담·치유까지 담당한다.
특수교육에서도 ‘무차별’이라는 원칙 아래 특수교육 대상 학생 196명을 지원하고 있다. 특수학급 미설치 학교 학생을 위한 순회교육과 치료·방과후 지원, 가족지원 등을 병행한다.
초등 돌봄도 관내 17개 초등학교에서 연중 운영한다. 농산어촌 지역 순회 방과후학교와 토요 방과후 프로그램을 통해 학교 규모나 거주지역에 따른 교육격차를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AI·영재교육에서 체육까지…작은 도시의 교육기회 넓힌다
미래교육 분야도 강화되고 있다. 과학발명교육센터는 SW·AI·메이커 특별과정과 찾아가는 발명교육을 운영하고, 문경교육지원청 부설 영재교육원에서는 초·중학생 58명이 수학·발명·SW·융합 분야 교육을 받고 있다.
체육 분야에서는 11개 학교가 육상·복싱·소프트테니스·씨름 등의 학교운동부를 운영하며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도 성과를 내고 있다. 학생선수에게는 운동만이 아니라 다양한 진로를 탐색할 수 있도록 진로체험 프로그램도 제공하고 있다.
교육시설 투자도 이어진다. 문경중학교 안에 건립되는 문경학생수영장에는 130억여 원이 투입된다. 25m 6레인 성인풀과 유아풀 등을 갖춰 학생들의 생존수영과 체육교육 기반을 확대한다. 문경초·문경여중·문경중은 대규모 공간재구조화 사업을 통해 미래형 학교공간으로 바뀐다.
◇학생 감소는 현실…‘학교 수’보다 ‘교육의 질’로

그러나 문경교육 앞에 놓인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농암초 청화분교장이 올해 3월 문을 닫았다. 마성중과 영흥초를 대상으로 적정규모학교 육성도 검토했으나 학부모 찬성률이 각각 15.4%, 9%에 그쳐 추진이 중단됐다.
학교 통폐합은 행정 효율만으로 결정하기 어려운 지역공동체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농촌에서 학교는 단순한 교육시설을 넘어 마을을 유지하는 구심점이기 때문이다.
결국 학생 5327명 시대 문경교육의 승부처는 학교와 학생의 숫자가 아니라 한 명의 학생에게 얼마나 다양한 교육기회를 제공할 수 있느냐에 있다.
돌리네 습지와 가은 에코월드는 교실이 되고, 지역 예술인은 선생님이 되며, 폐교는 가족과 주민이 다시 모이는 배움터가 되고 있다. 복지기관과 경찰, 상담기관까지 아이 한 명을 지키는 교육공동체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학교가 지역으로 나오고 지역이 학교 안으로 들어가는 것. 학생 수 감소와 지방소멸이라는 이중의 파고 앞에서 문경교육이 찾고 있는 해법이다. ‘문경을 담고 세계를 품다’라는 슬로건이 이제 지역 전체를 아이들의 배움터로 만드는 구체적인 실험으로 이어지고 있다.
문경매일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