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의 지혜

한 장의 지혜-제1장 삶의 지혜-5) 고요함 속에 진실이 있다

문경매일신문
입력
지홍기 칼럼 / 영남대학교 명예교수, 전)국가녹색성장위원회 위원, 전)한국물학술단체연합회 회장
5. 고요함 속에 진실이 있다, 인포그라픽
5. 고요함 속에 진실이 있다, 인포그라픽

소음의 시대에 살다
오늘날 우리는 소리의 홍수 속에 산다. 뉴스(news) 알림, 메시지(message), 영상, 광고가 하루 종일 우리의 주의를 빼앗는다. 세상은 점점 시끄러워지는데, 이상하게도 사람의 마음은 점점 더 공허하다. 소음 속에서는 자기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삶이 복잡하다고 느껴질수록, 가장 먼저 찾아야 할 것은 외부의 소음이 아니라 내면(內面)의 침묵이다. 고요함(寂靜)은 단순히 소리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마음이 투명해지는 순간이다.

 

멈춤에서 들려오는 소리
고요함은 멈춤에서 시작된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잠시 가만히 앉아 지금 이 순간을 바라볼 때, 세상이 전혀 다른 얼굴로 다가온다. 새소리가 들리고 바람이 스친다. 마음이 가라앉으면 그동안 보이지 않던 감정과 생각이 떠오른다. 멈추는 순간은 무료가 아니다. 그 안에는 이해와 회복의 힘이 숨어 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가끔은 멈춰야 한다. 멈추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길이 있다.

 

고요함은 사유의 바다
사람은 침묵 속에서 가장 깊은 생각을 한다. 철학자들이 자연 속에서 걷고, 시인들이 새벽을 좋아한 이유도 그 시간의 고요 때문이었다. 잡음이 사라질 때, 비로소 생각이 맑아진다. 나는 오랜 교수 생활 속에서도 연구의 통찰은 언제나 조용한 시간에서 태어났다. 고요한 새벽, 그때야 비로소 개념이 정리되고, 사색(思索)이 형태를 얻는다. 고요는 단순한 정지 상태가 아니라, 지금 여기(here & now)서 자신과 대화하는 지적(知的) 공간이다.

 

자연이 주는 고요의 언어
문경의 산길을 걷다 보면, 바람 한 줄기에도 언어가 있다. 강물의 흐름, 새벽 안개의 숨결, 나뭇잎의 떨림(vibration)—이 모든 것이 고요 속의 대화다. 자연은 한 번도 소리 지르지 않지만, 언제나 말을 건넨다. 그것은 존재(存在)의 진실을 깨닫게 하는 소리 없는 가르침이다. 산의 고요는 단순히 소리의 부재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치유의 힘이다. 이 고요함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은 인생의 길을 제대로 볼 줄 안다.

 

내면의 잡음과 싸우기
고요함의 가장 큰 적은 외부의 소리가 아니라 내 마음속 잡음이다. 염려, 불안, 후회, 분노가 마음을 끊임없이 흔든다. 내면의 소음을 잠재우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그 잡음이 줄어들 때, 비로소 진실(眞實)의 목소리가 들린다. 진실은 늘 조용하다. 강요하지 않고, 설명하지 않으며, 단지 존재한다. 자신 안의 소음과 싸워본 사람만이 진짜 평화를 이해한다. 그 싸움 끝에 남는 것이 바로 고요의 지혜다.

 

고요는 힘이다.
고요한 사람은 약해 보이지만, 그 내면엔 놀라운 강인함이 있다. 감정(感情)의 파도를 이겨내고, 상황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그에게서 나오는 에너지(energy)는 조용하지만 크다. 지도자의 품격, 학자의 통찰, 예술가의 영감은 모두 고요 속에서 싹튼다. 소란한 사람은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언제나 깊은 고요 속에서 나온다. 그래서 나는 고요함이야말로 가장 능동적인 상태라고 믿는다.

 

진실로 향하는 길
삶이 복잡하고 마음이 혼란할수록, 우리는 다시 고요로 돌아가야 한다. 그곳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where am I now)?” 이 작은 물음이 인생의 진실을 비추는 등불이 된다. 고요함은 절망을 평화로, 혼란을 통찰(洞察)로 바꾸는 변환점이다. 오늘 하루라도 잠시 조용히 앉아 숨을 고르며 자신을 바라보자. 모든 답은 그 고요한 공간 속에 이미 있다. 고요함 속에서, 우리는 세상과 자신을 동시에 이해하게 된다. 그곳이 바로 진실의 자리다.

 

맺음 말

소음이 가득한 시대일수록 우리는 더 깊은 고요를 필요로 한다. 고요함은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마음을 맑게 하고 자신과 마주하게 하는 힘이다. 바쁨 속에서 잠시 멈추고 내면을 바라볼 때, 비로소 감정과 생각이 정리되고 삶의 방향이 선명해진다. 진실은 언제나 조용히 존재하며, 내면의 소음이 가라앉을 때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고요는 회피가 아니라 가장 능동적인 성찰의 상태이며, 그 속에서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중심과 깊은 통찰을 얻는다. 결국 삶의 해답은 외부의 소란이 아니라 내면의 고요 속에 있다. 오늘 잠시 멈추어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 그 짧은 침묵이 우리의 삶을 더욱 단단하고 맑게 이끌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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