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홍기 칼럼

「피지컬 인공지능(Physical AI) 시대」Ⅸ. 윤리·법·철학적 쟁점 (82)

문경매일신문
입력
82) 사고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지홍기 | 영남대학교 명예교수, 전)국가녹색성장위원회 위원, 전)한국물학술단체연합회 회장

피지컬 AI가 만든 새로운 책임의 문제
자율주행 드론과 무인 전투 로봇, 스마트 무기체계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사고의 책임 소재가 복잡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기계가 일으킨 사고라 하더라도 결국 조작한 인간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었다. 그러나 스스로 학습하고 판단하는 피지컬 AI는 전혀 다른 상황을 만든다.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 자체 알고리즘(Algorithm)으로 결정을 내리고, 그 결과가 예기치 못한 피해로 이어질 때 과연 누구를 비난할 수 있는가? 기술 발전은 편리함을 주었지만 동시에 책임의 공백이라는 난제를 남겼다.

 

전통적 책임 구조의 한계
지금까지의 법 체계는 기본적으로 인간 중심이었다. 자동차 사고는 운전자, 의료 사고는 의사, 산업재해는 사업주에게 책임을 묻는 방식이다. 그러나 자율 무기체계(Autonomous Weapon System)와 같은 피지컬 AI 장비는 인간의 직접 통제를 벗어나 스스로 목표를 선택하고 행동한다. 이때 개발자, 제조사, 사용자, 혹은 명령권자 중 누구에게 책임을 돌려야 할지 명확하지 않다. 기존의 법률과 윤리 기준만으로는 새로운 기술이 만들어낸 복합적 상황을 설명하기 어렵다.

 

개발자의 책임인가, 사용자의 책임인가
피지컬 AI 사고가 발생했을 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주체는 개발자다. 프로그램 코드(Code)와 학습 데이터(Data)를 설계한 사람이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실제 현장에서 장비를 운용한 사용자가 최종 책임자라는 의견도 강하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사용자가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진화한다. 학습 과정에서 나타난 돌발 행동을 모두 개발자나 사용자에게 돌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공정하지 않다. 책임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볼 것인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국가와 조직의 역할
군사·안보 분야에서 피지컬 AI를 도입하는 주체는 대개 국가와 공공기관이다. 따라서 사고의 최종 책임 역시 개인이 아니라 제도를 운영한 조직이 져야 한다는 견해가 커지고 있다. 전장에서 오작동이 발생해 민간 피해가 생겼다면 단순히 현장 지휘관의 실수로만 돌릴 수 없다. 정책을 결정한 정부, 무기를 승인한 기관, 운용 절차를 만든 조직 전체가 공동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다. 이는 책임을 분산시키는 동시에 더 신중한 기술 도입을 요구하는 장치가 된다.

피지컬 인공지능 시대 인포그라픽 82-사고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인포그라픽

AI에게 법적 인격을 부여할 수 있는가?
일부 학자들은 인공지능에 전자적 인격(Electronic Personhood)을 부여해 독립적 책임 주체로 인정하자는 의견을 제시한다. 마치 기업 법인이 법적 책임을 지듯, 고도화된 AI 시스템에도 일정한 법적 지위를 주자는 발상이다. 그러나 기계는 도덕적 판단 능력이나 감정, 양심을 갖지 못한다. 처벌의 의미도 스스로 인식할 수 없다. 결국 AI에게 직접 책임을 묻는 방식은 철학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많은 한계를 안고 있다.

 

투명성과 설명 가능성의 중요성
사고 책임을 가리기 위해 가장 중요한 조건은 투명성이다. 피지컬 AI가 어떤 근거로 결정을 내렸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설명 가능한 인공지능(XAI, Explainable AI)이라고 부른다. 의사결정 과정이 기록되고 추적 가능해야만 원인을 분석하고 책임 주체를 가릴 수 있다. 블랙박스(Black Box)처럼 불투명한 AI 시스템을 그대로 두고서는 윤리적 판단도 법적 판결도 불가능하다. 기술의 발전만큼이나 관리 체계의 발전이 요구된다.

 

인간 중심 원칙의 재확인
결국 아무리 정교한 피지컬 AI가 등장하더라도 최종 책임은 인간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 기술은 도구이며, 도구의 사용 여부와 범위를 결정하는 존재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는 명확한 규범과 안전 장치, 감시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을 회피하는 기술이 아니라, 책임을 분명히 할 수 있는 기술을 선택해야 한다. 피지컬 AI 시대의 핵심 질문은 단순하다. 편리함보다 인간의 존엄과 안전을 우선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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