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산(息山) 이만부 선생 학술발표회 성료
문경 근암서원 7현 중 한 명으로 배향…예학·지리·문학·서예 등 폭넓은 학문세계 남겨

문경시는 28일 문경문화원 다목적실에서 ‘식산 이만부 선생의 생애와 학문’을 주제로 학술발표회를 열고 조선 후기 영남 학계를 대표했던 식산(息山) 이만부(李萬敷·1664~1732) 선생의 삶과 학문세계를 재조명했다.
성균관유도회 경상북도본부와 문경지부가 주최·주관한 이번 학술발표회는 식산 선생의 학문 세계와 인문학적 가치를 현대적 관점에서 살펴보고, 문경과 인연이 깊은 역사·문화 자산을 널리 알리기 위해 마련됐으며 지역 유림과 시민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식산 이만부 선생은 본관이 연안(延安)인 연안이씨로, 자는 중서(仲舒), 호는 식산(息山)이다. 조부는 이조·예조판서 등을 지낸 근옹(芹翁) 이관징(李觀徵)이며, 부친은 예조참판을 지낸 박천(博泉) 이옥(李沃)으로, 당대 남인계의 대표적인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서울에서 태어난 이만부 선생은 어려서부터 집안의 학문을 이어받아 학문적 기초를 다졌다. 그러나 당쟁으로 정치적 격변이 이어지자 벼슬길보다 학문과 은거의 삶을 택했다. 1697년 34세 때 서울을 떠나 상주로 내려와 지금의 상주시 외답동 논실마을에 정착했다.
특히 이곳은 마을 남쪽에 자리한 산인 식산(息山)과 맞닿아 있는 곳으로, 선생은 이 산의 이름을 따 자신의 호를 ‘식산’이라 했다. 이후 식산 아래에 학문 공간을 마련해 독서와 저술, 후학 양성에 힘썼다.

현재 외답동 식산 아래에는 선생의 학문과 은거생활을 보여주는 천운정사(天雲精舍)가 남아 있다. 이만부 선생이 1700년경 건립한 것으로 알려진 천운정사는 식산 선생이 조성했던 학문 공간 가운데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대표적인 유적으로, 현재 경상북도 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천운정사는 단순한 살림집이라기보다 식산 선생이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제자들과 학문을 논하던 강학 공간이었다. 마루방인 천운당(天雲堂)과 온돌방인 양호료(養浩寮), 연못 조감당(照鑑塘) 등이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선생이 직접 쓴 「노곡기(魯谷記)」에도 당시 공간 구성이 자세하게 기록돼 있다.
식산 선생은 평생 관직에 뜻을 두기보다 예학과 성리학을 비롯해 역사·지리·문학·서예 등 폭넓은 분야를 탐구했다. 특히 글씨에도 뛰어나 전서(篆書)를 비롯한 옛 서체 연구에 깊은 관심을 보였으며, 1723년 작성한 ‘식산당전법(息山堂篆法)’ 등 관련 자료도 전하고 있다. 식산 종가에 전해온 방대한 고문서와 고서는 오늘날 조선 후기 영남 사림의 학문과 생활상을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조선 후기 정치의 중심에서 벗어나 상주 식산 아래에 스스로 삶의 터전을 정하고 학문과 저술, 후학 양성에 평생을 바친 그의 삶은 ‘은거한 선비’에 머물지 않았다. 성리학을 기반으로 예학과 역사·지리·문학·예술 등으로 학문의 영역을 넓혔다는 점에서 18세기 실학적 학풍을 앞서 보여준 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식산 선생과 문경의 인연도 깊다. 선생은 현재 문경시 산북면 서중리 근암서원(近嵒書院)에 배향된 7현 가운데 한 명으로, 문경지역 유림은 오랜 세월 선생의 학문과 정신을 계승해 왔다. 상주 외답동 식산 아래에서 꽃피운 그의 학문이 문경 근암서원으로 이어지면서 상주와 문경을 잇는 영남 유학사의 중요한 연결고리가 된 셈이다.
이날 학술발표회에서는 이규필 경북대학교 부교수가 ‘식산 이만부의 시 세계’를 주제로 발표하고, 황만기 국립경국대학교 교수가 ‘식산 이만부의 편지글에 나타난 학문 고찰’을 발표했다. 참석자들은 시와 편지글 등 식산 선생이 남긴 기록을 통해 그의 삶과 사상, 학문적 성과를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봤다.
이재업 성균관유도회 경상북도본부장은 “이번 학술발표회가 식산 이만부 선생의 학술적 위상을 높이고 지역 문화자산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학홍 문경시장은 “이번 학술발표회를 통해 식산 이만부 선생의 학문적 가치와 유교문화의 전통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지역의 소중한 역사·문화 자산을 계승하고 널리 알리는 데 유림과 시민 여러분이 함께해 주시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문경매일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