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김선치 벼루 출토 문경 우물에 표지석 세워

고려 후기 문신이자 충신인 낙성군(洛城君) 김선치(金先致, 1318∼1398) 선생의 벼루가 발견된 우물터에 표지석을 세웠다.
난계 김득배장군 기념사업회(회장 이창근)는 30일 오후 2시, 문경시 흥덕동 깃골길 29(문경중학교 뒤) 옛 우물터에서 ‘김선치 벼루 출토 표지석 제막식’을 개최했다.
이번에 기념되는 ‘김선치의 벼루(金先致 硯)’는 상주시 사벌면 삼덕리 산17-8 소재 상주박물관에 소장돼 있으며, 경상북도 지방유형유산 제384호(2006. 6. 29 지정)로 등록된 유물이다.

이 벼루는 김선치가 12세이던 고려 충숙왕 16년(1329)에 제작된 것으로, 뒷면에 ‘金先致 年十二’라 음각하고 친필 수결(手決)을 남겨 제작 연대가 명확히 확인된다. 이후 약 430여 년이 지난 조선 영조 38년(1762), 문경시 흥덕동 예동의 이 우물에서 이연원(李延元)에 의해 발견됐다.
이 벼루는 곧 동래의 김덕장(金德章)에게 전해졌고, 그가 별세하자 동생 김현장이 수소문 끝에 김선치의 14세손 김담(金湛)에게 전달했다. 김담이 이를 문경현감 김재악(金載岳, 재임 1764~1768)에게 보여주자, 현감은 “기이하다”며 직접 벼루 집을 제작케 했다고 전한다.

이 벼루와 벼루 집은 당시의 양식과 재질을 잘 보여주는 귀중한 유산으로, 특히 고산석(高山石) 재질로 된 벼루는 고려시대의 조형미와 세련된 조각기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당시 조선의 문사 30여 명이 이 벼루를 소재로 지은 기(記)·시(詩)·가(歌)·행(行) 등을 모은 ‘낙성군 선조 고연운(洛城君 先祖 古硯韻)’은 그 정신문화적 가치를 더하고 있다.
김선치는 본관이 상산(商山)이며, 판종부시사 김록(金祿)의 아들로 태어나, 포은 정몽주의 스승으로 알려진 정당문학 김득배(金得培)의 아우이다. 문무를 겸비한 고려의 충신으로서, 여말 홍건적의 난을 평정하며 김득제(金得齊)와 함께 ‘삼원수(三元帥)’로 불릴 만큼 탁월한 공훈을 남겼다.

이창근 난계 김득배장군 기념사업회장은 “김득배 장군의 충의와 김선치 선생의 문학적 기품이 함께 깃든 이곳 우물터는 문경의 자랑이자 고려 선비정신의 상징”이라며, “이번 표지석 제막을 통해 지역의 역사적 자산이 후대에도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문경매일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