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문화

박열 의사, 제헌국회 연설 속기록 발굴

이민숙 기자
입력
박열의사기념관, 1948년 8월 16일 제헌국회 제41차 본회의 연설문 공개
박열 의사, 제헌국회 연설 속기록 발굴
박열 의사, 제헌국회 연설 속기록 발굴

당파 싸움·남인 북인 망국병 재발하면 이 나라 영원히 멸망

재일동포 재산·기술 활용, 국가 차원 동포정책 수립 촉구

 

일제가 대역죄인으로 몰아 사형을 선고했던 문경 출신 독립운동가 박열(朴烈·1902~1974) 의사가 22년 뒤 독립된 대한민국 제헌국회에서 연설한 속기록이 확인됐다.

 

박열의사기념관이 공개한 국회 속기록에 따르면 박열 의사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다음 날인 1948816일 제헌국회 제1회 제41차 본회의에 재일거류민단장 자격으로 출석해 재일동포를 대표해 인사했다.

박열 의사, 제헌국회 연설 속기록 발굴
박열 의사, 제헌국회 연설 속기록 발굴

박열은 우리 긴 역사상에 가장 빛나는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전 세계에 공포한 후 최초의 국회라고 감격을 나타낸 뒤, 제헌국회에 비어 있던 북한지역 100석을 바라보며 “38 이북동포의 안부를 생각하니 가슴이 뻐근하다고 분단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이어 당시 국가적 과제로 행정권 이양, 국제 승인, 사상 선도, 산업 부흥, 골육전의 미연 방지 등을 제시하며 초대 국회의원들에게 최선을 다해 줄 것을 당부했다.

 

특히 정치적 분열에 대해서는 강한 경고를 남겼다.

 

만약 우리의 역사의 뒤푸리라고 할까 당파 싸움이나 남인 북인 운운의 망국병이 재발한다면 이 나라는 영원히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연설 후반부에서는 일본에 남아 있던 약 60만 동포 문제를 국가적 과제로 제시했다.

 

박열은 당시 재일동포의 재산이 1000억 원을 넘고 국가 건설에 필요한 일반·특수 기술자도 수천 명에 이른다며, 정부 정책에 따라 이들의 자본과 기술을 조국 건설에 활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재일 60만 동포에 대한 적절한 시책도 시급히 수립해야 한다며 대한민국 정부와 국회가 재일동포 보호와 지원에 적극 나설 것을 촉구했다.

 

박열은 이날 단순히 연설에 그치지 않고 △재류동포 조사표 △한국인학교·학동 통계표 △일본인과 결혼한 사람들의 통계표 △재일동포 재감자 통계표 △점령정책 아래 재일동포 동태 등 5종의 조사자료를 국회사무국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정부 수립 직후부터 박열이 재일동포 문제를 대한민국의 주요 국가정책으로 다뤄야 한다고 제안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박열 의사, 제헌국회 연설 속기록 발굴
박열 의사, 제헌국회 연설 속기록 발굴

문경에서 태어난 박열은 3·1운동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가네코 후미코와 함께 천황제와 식민통치에 맞섰다. 1926년 일본 대심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뒤 무기징역으로 감형돼 해방 때까지 22년 넘게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일본에 남아 재일동포 사회를 조직하고 재일본조선인거류민단 초대 단장을 맡아 동포 권익 보호에 나섰다.

 

1926년 일본 법정의 사형수였던 박열이 1948년 대한민국 제헌국회의 연설자로 선 장면은 한 독립운동가의 삶뿐 아니라 우리 근현대사의 극적인 반전을 보여준다.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그가 이날 자신의 옥고를 내세우기보다 분단된 동포와 민생, 정치적 분열, 재일동포의 미래를 이야기했다는 점이다.

 

78년 전 문경인 박열이 대한민국 첫 국회에서 남긴 당파 싸움이나 남인 북인 운운의 망국병이 재발한다면 이 나라는 영원히 멸망하고 말 것이라는 경고는 오늘에도 묵직한 울림을 전하고 있다.

 

다음은 국회 속기록 전문이다.

 

재일거류민단장 朴烈(박열) 1대 국회(제헌국회) 141차 국회 본회의에서 인사

 

날짜 1948816

 

재일거류민단장 박열 이 사람이 이제 소개받은 박열이올시다.

 

우리 긴 역사상에 가장 빛나는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전 세계에 공포한 후 최초의 국회, 우리 국가를 대표하시는 국회의원 여러분! 이 신성한 자리와 귀중한 시간을 얻어서 재일 조선동포를 대표해서 한마디 말씀드리게 된 것을 무상한 영광으로 생각하고 희열에 넘치는 바이올시다.

 

기미운동 이래 방법은 각종 각색이였을지라도 오직 조국광복을 위하여 혈한(血汗)은 물론 생명을 아끼지 않고 투쟁하여 주시고 또한 금번 총선거 시는 과연 피로 물드렸다고 할 만큼 악질 공산당의 반역이 극심하였지만은 용감히 이를 격퇴시키고 국민에게 신()을 물어 신임과 지지를 받아 국회에 나오신 제씨께 존경과 감사의 염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특히 불과 2개월 남짓한 단시일에 헌법 제정, 정부 수립 등의 가장 중요한 문제를 용이히 선처하였음을 볼 때 국회의원 제씨의 애국지심의 결정(結晶)이라고 믿고 또 한 번 감사를 드리는 바이올시다.

 

그러나 이 자리를 살필 때 상금 비여 있는 100명의 의석, 38 이북동포의 안부를 생각하니 가슴이 뻐근한 것뿐이올시다.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주인을 잃었던 이 땅의 폐허, 일반 민정의 타락, 도탄에 빠진 이 백성의 참아 볼 수 없는 민생, 이상은 과연 시급 화급한 문제이외다.

 

요령을 다시 말씀드리면 행정권 이양, 국제 승인, 사상 선도, 산업 부흥, 골육전(骨肉戰)의 미연 방지, 이것을 위하여 우리가 가진 바 전부와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만약 우리의 역사의 뒤푸리라고 할까 당파 싸움이나 남인 북인 운운의 망국병이 재발한다면 이 나라는 영원히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제반사 그 출발에 있는 것이요, 그 토대에 있는 것이니 대한민국의 초대 국회의원 그 사명은 거룩하기도 하려니와 비진리와는 피 흘리기까지 싸워 주시기를 바라오며, 한동안 멀어진 3영수(三領袖)의 협조를 위하여서는 목적 달성을 기하는 날까지 부절(不絶)한 노력을 계속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여러분께 드릴 말씀은 일본에 있는 동포의 재산은 1000억 원을 넘는 거액이며 또한 우리 국가 건설에 필요한 일반 기술과 특수 기술자의 수는 수천을 해아릴 수 있는 현상(現狀)인데 이것은 본국에서 세우는 정책 여하에 따라서는 무조건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이것이 실패하면 민족 발전에 대지장이 되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의 깊은 관심과 연구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재일 60만 동포에 대한 적절한 시책도 시급히 수립되니 본국에도 공헌할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친선이 실현되고 세계 평화에도 기여하는 바 다대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입니다.

 

이번에는 급작히 본국에 오게 되어서 여러분들에게 보고해 드릴려고 하는 준비도 잘 안 되었읍니다마는 간단히 불완전하나마 서류를 만들어 가지고 왔습니다.

 

1에는 재류동포의 조사표, 2에는 한국인학교 급 학동 통계표, 3에는 일본인과 결혼한 사람들의 통계표, 4에는 재일동포 재감자(在監者) 통계표, 5의 점령 정책하에 있는 재일동포의 동태에는 일반적 민생문제, 사법 관계의 문제, 대외국인 관계, 사상 경향 등이올시다.

 

이 서류는 사무국에 제출하겠으니 사무국에서 선처해 주시기를 바라고 이 자리를 내립니다.

 

 

문경매일신문

이민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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