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흘산사(主屹山祠)를 돌아보며

우리 고장 문경의 진산인 주흘산 자락, 문경읍 상리에는 주흘산사가 있습니다. 웅장한 산세와 깊은 골짜기, 맑은 물과 울창한 숲을 품은 주흘산은 예부터 문경 사람들의 삶을 보살핀 생명의 터전이자 경외의 대상이었습니다.
‘세종실록지리지’와 문경의 여러 읍지에는 주흘산이 국가 사전(祀典)의 소사(小祀)에 올랐으며, 해마다 봄과 가을에 나라에서 향과 축문을 내려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전합니다. 이는 옛사람들이 산을 단순한 자연 지형이 아니라 하늘과 땅의 조화 속에서 만물을 낳고 기르는 신성한 존재로 여겼음을 보여 줍니다.
주흘산 제향은 조정이 향축(香祝)을 내려보내고 문경현감이 국왕을 대신해 봉행한 국가적 산천제였습니다. 지방관이 새로 부임하면 주흘산신에게 이를 알리고 문경의 평안과 백성의 안녕을 기원했다는 기록도 전합니다. 산과 물의 은혜 없이는 삶이 이어질 수 없다는 깨달음, 자연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감사와 경외를 품었던 마음이 이 제향에 담겨 있었습니다.

오는 10월 13일에는 문경새재 제1관문 부근의 새재(주흘) 산신각에서 문경과 문경인의 번영과 안녕을 기원하는 산신 고유가 있을 예정입니다. 문경의 진산인 주흘산신께 문경의 발전과 무사태평을 기원하고, 문경 사람들의 평안을 축원하는 뜻깊은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산신 고유는 복을 비는 의례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주흘산이 베풀어 온 자연의 은혜를 되새기고, 인간도 자연의 일부임을 깨달으며, 산림과 물길, 생명을 온전히 보전하겠다는 다짐의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자연에 대한 경외는 막연한 두려움이 아니라 생명의 질서를 존중하고 후손에게 건강한 자연을 물려주려는 겸손과 책임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통을 올바르게 계승하려면 몇 가지 쟁점을 공론을 통해 분명히 정립해야 합니다. 옛 문헌에 각각 기록된 주흘산사(主屹山祠)와 성황사(城隍祠)는 같은 제향처였을까요, 아니면 서로 다른 신을 모신 별개의 사당이었을까요? 문경읍 상리의 주흘산사와 문경새재 제1관문 부근의 새재산신각·조령성황사는 역사적으로 어떤 관계에 있었을까요? 조선시대 국가 사전의 소사로 봉행된 주흘산 제향과 오늘날 산신 고유를 동일한 제의(祭儀)의 계승으로 볼 수 있을까요?

앞으로 사료를 바탕으로 제향처의 위치와 명칭, 주신(主神), 제향의 성격과 절차를 면밀히 고증해야 합니다. 이를 토대로 ‘주흘산사 산신고유’의 역사적 정통성과 현대적 의미를 정립하고, 자연을 존중하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정신까지 담아 문경을 대표하는 전통문화로 계승해야 할 것입니다.
역사와 전통을 지닌 주흘산사 산신 고유가 시민의 공감과 충분한 논의를 바탕으로 올바르게 복원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주흘산의 깊고 넉넉한 품을 우러르며 자연의 은혜에 감사하고, 문경의 안녕과 화합은 물론 자연과 사람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미래를 기원하는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조선시대 소사로 제향한 주요 산사(山祠)]

태종 14년(1414) 국가 사전이 정비되면서 다음의 명산들이 소사에 편입되었다. 치악산(雉嶽山), 계룡산(鷄龍山), 죽령산(竹嶺山), 우불산(于弗山), 주흘산(主屹山), 금성산(錦城山), 목멱산(木覓山), 오관산(五冠山), 우이산(牛耳山), 감악산(紺嶽山), 의관령(義館嶺)이다.
이들 제사는 단순한 민간 산신제가 아니라 국가의 사전과 의례규정에 따라 행한 공식 국가제사였다. 다만 임금이 직접 참석한 것은 아니며, 조정이 향과 축문을 내리고 해당 지역의 수령이 국왕을 대신해 봉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주흘산사는 조선시대 국가 사전에서 소사로 정한 제향처로, 조정에서 봄가을마다 향과 축문을 내리고 문경현감이 국왕을 대신하여 산신제를 봉행했던 국가 산천제향(山川祭享)의 공간이다.
문경매일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