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이 다시 시민에게로… 문경에 뿌리내린 ‘기부의 선순환’
모인 정성은 교육·복지·돌봄으로 환원… 지역 발전의 든든한 동력

경제가 어려울수록 지갑은 닫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문경에서는 오히려 이웃과 고향을 향한 마음의 문을 여는 사람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출향 기업인의 억대 기부에서부터 후학을 위한 장학금, 고향사랑기부금, 소상공인과 시민들의 작은 이웃돕기 성금까지 나눔의 방식도 다양하다. 이렇게 모인 정성은 장학사업과 취약계층 복지, 아동 돌봄 등으로 다시 시민들에게 돌아가며 또 다른 나눔을 만들어내고 있다.
고유가와 불안정한 국제 정세 등으로 국내 경제 여건도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문경에서 이어지고 있는 이 같은 기부 행렬은 단순한 성금 모금을 넘어 지역공동체를 지탱하는 하나의 힘으로 자리 잡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문경시 마성면 출신 재경 사업가 권태인(79) 영한산업 회장이다. 권 회장은 지난달 고향인 마성면을 위해 2억원을 기탁하면서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 가운데 누적 5억원 이상 기부자가 가입하는 ‘골드회원’에 이름을 올렸다. 전국 28번째다.
권 회장은 2023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모두 3억원을 기부한 데 이어 이번 2억원을 추가하면서 누적 기부액 5억원을 기록했다. 이와 별도로 이전에도 41차례에 걸쳐 6천여만 원을 문경시에 기탁하는 등 오랜 기간 고향 사랑을 실천해 왔다.
매년 여러 차례 고향을 찾는 권 회장은 지역의 어려운 이웃과 고향 발전을 위해 꾸준히 마음을 보태고 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원 이상을 기부한 개인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에는 현재 문경지역에서 7명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출향 기업인들의 ‘고향 후배 사랑’도 이어져

후학을 위한 출향 기업인들의 장학금 기탁도 계속되고 있다. 문경 출신 기업인 여경목 ㈜에스앤디 대표이사는 최근 (재)문경시장학회에 장학금 1억원을 기탁했다. 2018년 1억원에 이어 두 번째로, 여 대표가 고향 인재 육성을 위해 내놓은 장학금은 모두 2억원에 이른다.
이 같은 출향인과 지역 독지가들의 꾸준한 참여는 문경의 교육 기반을 키우는 밑거름이 되고 있다.
2013년 설립된 (재)문경시장학회는 시민과 출향인, 기업인 등의 지속적인 기탁에 힘입어 자산 규모가 118억원까지 성장했다. 이를 기반으로 학생 장학금 지급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재육성사업을 펼치고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우수교사 포상’과 서울에서 운영하는 기숙형 학사다. 우수교사 포상은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교사들의 사기를 높이고, 그 효과가 다시 학생들에게 양질의 수업과 교육환경으로 돌아가도록 하는 사업이다. 장학사업의 대상을 학생에게만 한정하지 않고 교육의 또 다른 주체인 교사까지 확대한 것이다.
서울과 수도권 대학에 진학한 지역 학생들을 위한 ‘서울 문경학사’도 실질적인 교육복지 사업으로 자리 잡았다. 34실 규모로 대부분 1인 1실 형태로 운영되며,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어 높은 주거비를 감당해야 하는 문경 출신 대학생과 학부모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
결국 한 사람의 장학금 기탁이 학생 한 명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교사와 교육환경, 대학생 주거 지원으로까지 이어지는 셈이다.
◇고향사랑기부금 15억원 넘어… 세탁차·돌봄차량으로 시민 곁에

2023년 도입된 고향사랑기부제 역시 문경의 새로운 나눔 통로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지난해에는 7천여 건이 넘는 기부를 통해 7억4천200여만 원이 모였다. 올해도 기부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으며, 통상 고향사랑기부가 연말에 집중되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의 모금 추이가 주목된다.
제도 시행 이후 지금까지 문경시에 답지한 고향사랑기부금은 1만3천780건, 15억2천700여만 원에 이른다.중요한 것은 모금액의 규모만이 아니다. 고향을 생각하며 보내온 기부금이 실제 시민들의 삶을 바꾸는 사업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문경시는 고향사랑기부금을 활용해 문경시종합사회복지관 이동세탁차량을 지원했다. 거동이 어렵거나 세탁환경이 열악한 취약계층을 직접 찾아가는 세탁서비스가 가능해지면서 생활복지의 접근성을 높였다.
문경시다함께돌봄센터에는 통학차량을 지원했다. 아이들의 안전한 이동과 돌봄을 돕고 맞벌이 가정 등의 양육 부담을 덜면서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 데 기부금이 쓰이고 있는 것이다.
고향을 떠난 사람이 보내온 기부금이 다시 고향의 어르신과 취약계층, 아이들의 일상으로 돌아오는 셈이다.
◇몇천원의 저금통까지… 일상으로 번지는 ‘생활기부’

문경의 나눔 문화는 고액기부자나 출향 기업인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연말연시 희망나눔 캠페인을 비롯해 지역 곳곳에서는 시민들이 자신의 형편에 맞게 참여하는 크고 작은 기부가 이어지고 있다.
소상공인들이 수익금의 일부를 정기적으로 나누는 ‘착한가게’를 비롯해 아동·청소년들이 한푼 두푼 모은 저금통을 이웃돕기 성금으로 전달하고, 각종 기관·단체와 봉사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기술과 재능을 이웃을 위해 내놓는다.
금액의 많고 적음보다 ‘나도 지역사회를 위해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참여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누군가 내놓은 작은 정성이 어려운 이웃의 생활을 돕고, 학생에게는 배움의 기회를 넓혀주며, 아이들에게는 보다 안전한 돌봄환경을 제공한다. 도움을 받은 주민은 다시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성장해 또 다른 나눔에 참여할 수 있다.
기부→복지·교육·돌봄→주민 삶의 질 향상→또 다른 나눔으로 이어지는 ‘기부의 선순환’이 문경 곳곳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지역소멸과 인구감소가 지방도시의 가장 큰 과제로 떠오른 상황에서 이러한 공동체 문화는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지역의 사회적 자산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행정의 힘만으로 채우기 어려운 부분을 시민과 출향인, 기업과 단체가 함께 메우면서 지역공동체의 연결망을 더욱 촘촘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김학홍 문경시장은 “고향사랑기부제와 장학금 기탁, 이웃돕기 성금 나눔 등으로 이어지는 나눔 릴레이가 문경시의 소중한 자산이 되고 있다”며 “단순한 일회성 행사를 넘어 지역 발전과 소외계층을 지원하는 자발적인 기부문화가 지역사회에 굳건히 정착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부자들의 소중한 뜻이 헛되지 않도록 기금을 투명하고 내실 있게 운영하고, 그 혜택이 꼭 필요한 시민들에게 돌아가 지역사회 전체에 긍정적인 효과가 확산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어려울 때 내미는 손길은 더욱 따뜻하다. 누군가의 고향 사랑이 학생의 꿈을 키우고, 시민의 작은 정성이 어려운 이웃의 일상을 지탱하며, 그렇게 받은 온기가 다시 또 다른 나눔으로 이어지는 곳. 문경에서 피어나고 있는 ‘기부의 선순환’은 지역을 움직이는 또 하나의 힘이 되고 있다.
문경매일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