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홍기 칼럼

「피지컬 인공지능(Physical AI) 시대」Ⅷ. 군사·안보와 피지컬 AI

문경매일신문
입력
77) 국제 규범은 가능한가?
지홍기 | 영남대학교 명예교수, 전)국가녹색성장위원회 위원, 전)한국물학술단체연합회 회장

자율무기 시대의 도래와 새로운 질문

피지컬 인공지능은 이제 산업과 일상의 영역을 넘어 군사와 안보 분야의 중심 기술로 자리잡고 있다. 인공지능이 탑재된 드론(Drone), 무인전차, 자율잠수정과 같은 무기체계는 이미 여러 나라에서 실전 배치 단계에 들어섰다. 이러한 기술은 인간 병사의 위험을 줄이고 작전 효율을 높이는 장점을 제공한다. 그러나 동시에 기계가 스스로 목표를 선택하고 공격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혀 새로운 윤리적 문제를 만들어 내고 있다. 전쟁의 주체가 인간이 아니라 알고리즘이 되는 상황에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하는 근본적 의문이 제기된다. 그래서 국제사회는 지금 피지컬 AI 무기에 대한 규범과 기준을 만들 수 있는가라는 중요한 질문 앞에 서 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 인류의 미래 안전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기술 발전 속도와 규범의 격차

문제의 핵심은 기술발전 속도가 제도와 윤리를 훨씬 앞서가고 있다는 점이다. 인공지능 기술은 매년 놀라운 속도로 진화하지만, 이를 규율할 국제법과 제도는 매우 느리게 움직인다. 자율무기체계 이미 현실이 되었지만, 무엇을 자율무기로 규정할 것인지조차 국제적으로 명확히 합의되지 않았다. 각국은 군사적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기술개발에 집중하고 있으며, 규범논의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특히 강대국일수록 새로운 무기기술을 전략적 자산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규제에 동의하기 어려우므로 국제규범 논의는 선언적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기술과 규범 사이의 간격이 커질수록 위험은 더욱 확대된다.

 

자율성(Autonomy)의 범위를 둘러싼 논쟁

국제 규범 수립에서 가장 큰 쟁점은 자율성의 허용 범위를 어디까지로 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완전 자율무기를 전면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과, 부분적 자율성은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일부 국가는 인간이 최종 공격결정을 내리는 인간 통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반면 또 다른 국가는 전쟁의 속도가 너무 빨라 인간 개입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견해 차이는 단순한 기술 논쟁이 아니라 안보 전략과 직결된 문제다. 자율성의 기준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무기의 개발방향과 사용방식이 완전히 달라진다. 그래서 이 논쟁은 국제규범 논의의 가장 어려운 난제로 남아 있다.

피지컬 인공지능 시대 인포그라픽 77-국제 규범은 가능한가
피지컬 인공지능 시대 인포그라픽 77-국제 규범은 가능한가

이중용도(Dual Use) 기술의 딜레마

피지컬 AI 기술은 대부분 평화적 목적과 군사적 목적을 동시에 지니는 이중용도(Dual Use) 기술이다. 자율주행차, 재난 구조 로봇, 산업 자동화 시스템과 같은 기술은 민간 영역에서는 매우 유용하지만, 약간의 변형만으로도 군사 무기가 될 수 있다. 이런 특성 때문에 특정 기술을 단순히 금지하는 방식의 규범은 현실적으로 적용하기 어렵다. 국제 규범을 만들려면 기술 자체가 아니라 사용 방식과 목적을 중심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러나 이를 객관적으로 구분하는 일은 매우 복잡하다. 또한 각국이 보유한 기술 수준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공정한 기준을 세우기도 쉽지 않다. 이중용도라는 특성은 국제 규범 수립을 가로막는 가장 큰 현실적 장벽이다.

 

책임성(Accountability)과 투명성의 필요

국제 규범이 반드시 포함해야 할 핵심 요소는 책임성과 투명성이다. 자율무기로 인해 민간인 피해가 발생했을 때 누가 법적·윤리적 책임을 질 것인지 명확해야 한다. 알고리즘 오류, 데이터 편향, 해킹(Hacking)과 같은 위험 요소에 대한 검증 절차도 국제 기준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무기체계의 개발 과정과 운용방식이 일정 수준 이상 공개되어야 국제적 신뢰가 형성될 수 있다. 이러한 장치가 없다면 자율무기는 언제든 통제 불가능한 위험으로 변할 수 있다. 결국 국제규범의 목적은 기술을 막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인간의 안전을 위협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만드는 데 있다. 책임과 투명성은 그 안전장치의 가장 기본적인 토대다.

 

국제 규범은 가능한가?

피지컬 AI 시대의 국제 규범은 이상이 아니라 반드시 실현해야 할 현실적 과제다. 과거 인류는 화학무기와 생물무기, 핵무기에 대해서도 어렵지만 결국 국제적 규범을 만들어 냈다. 자율무기 역시 인류 전체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동일한 접근이 필요하다. 완벽한 합의가 어렵다고 해서 규범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다. 최소한의 기준과 원칙이라도 마련해야 기술 발전이 인류의 재앙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국제규범은 가능하냐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빠르고 지혜롭게 만드느냐의 문제다. 피지컬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키는 도구가 되도록 만드는 일, 그것이 지금 시대가 요구하는 국제사회의 가장 중요한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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