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홍기 칼럼

「피지컬 인공지능(Physical AI) 시대」Ⅸ. 윤리·법·철학적 쟁점

문경매일신문
입력
81) 피지컬 AI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지홍기 | 영남대학교 명예교수, 전)국가녹색성장위원회 위원, 전)한국물학술단체연합회 회장

기술은 발전했지만 책임은 어디에

피지컬 인공지능은 이제 자동차, 공장, 병원, 군사 분야까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자율주행차 도로를 달리고, 로봇(Robot)이 사람 대신 작업을 수행하며, 인공지능 시스템이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새로운 문제가 등장한다. 만약 피지컬 AI가 잘못된 판단을 내려 사고가 발생했다면, 그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기계가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상황에서 기존의 법과 윤리 체계는 쉽게 답을 내리지 못한다. 그래서 오늘날 가장 뜨거운 논쟁이 바로 책임의 문제다.

 

기계는 책임의 주체가 될 수 없다

법적 책임은 기본적으로 의사와 의도를 가진 존재에게만 부여된다. 사람이나 법인은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지만, 인공지능은 아직 그런 지위를 갖지 못한다. 피지컬 AI는 아무리 정교해도 알고리즘(Algorithm)과 데이터에 따라 움직이는 프로그램일 뿐이다. 스스로 도덕적 판단을 하거나 잘못을 반성할 수 없다. 따라서 사고가 발생했을 때 AI 자체에게 형벌이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결국 책임은 언제나 인간 사회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 인간이 정확히 누구인가를 가려내는 일이다.

 

책임이 나뉘는 복잡한 구조

피지컬 AI 시스템은 한 사람이 만드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 하드웨어 제작자, 데이터 제공자, 운영자, 사용자 등 수많은 주체가 연결되어 있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차 사고가 났을 때 원인이 센서(Sensor) 결함인지, 프로그램 오류인지, 운전자 관리 부주의인지 판단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런 복잡한 구조 때문에 책임은 여러 단계로 분산된다. 전통적인 법 체계는 한 명의 명확한 책임자를 전제로 만들어졌지만, 피지컬 AI 시대에는 이런 방식이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 새로운 형태의 책임 규정이 필요해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제조물 책임(Product Liability)의 한계

현재 가장 많이 논의되는 방식은 제조물 책임을 확대하는 방법이다. AI를 하나의 제품으로 보고, 결함이 있을 경우 제작자에게 책임을 묻는 방식이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단순한 기계와 다르다. 학습을 통해 스스로 성능이 변하고 환경에 따라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낸다. 같은 프로그램이라도 사용 조건에 따라 전혀 다른 행동을 할 수 있다. 이런 특성 때문에 기존의 제조물 책임 개념만으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피지컬 AI는 살아 움직이는 기술에 가깝기 때문에 더 정교한 법적 장치가 요구된다.

피지컬 인공지능 시대 인포그라픽 81-피지컬 AI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인포그라픽
피지컬 인공지능 시대 인포그라픽 81-피지컬 AI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인포그라픽

운영자와 사용자의 책임

많은 경우 피지컬 AI의 최종 행동은 운영자나 사용자의 선택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시스템을 어떻게 설정하고 어떤 목적으로 사용했는지가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최근에는 인간 통제를 책임 판단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자동으로 작동하더라도 최종 결정과 감독의 의무는 인간에게 있다는 원칙이다. 이는 기술 발전 속에서도 인간의 책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피지컬 AI 시대에도 책임의 중심에는 여전히 사람이 있어야 한다.

 

설명 가능성(Explainability)의 중요성

책임을 제대로 묻기 위해서는 사고 원인을 명확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많은 인공지능 시스템은 내부 판단 과정이 복잡해 결과의 이유를 알기 어렵다. 이른바 블랙박스(Black Box) 문제다. 그래서 최근에는 설명 가능성(Explainability)을 갖춘 AI 개발이 중요한 윤리 원칙으로 강조되고 있다. 시스템이 어떤 근거로 결정을 내렸는지 투명하게 밝힐 수 있어야만 법적 책임도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기술의 성능만큼이나 과정의 투명성이 중요해진 시대다.

 

새로운 책임 체계가 필요한 시대

피지컬 인공지능에게 직접 책임을 물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책임을 포기할 수도 없다. 결국 해답은 인간 중심의 새로운 제도와 규범을 만드는 데 있다. 개발 단계에서의 안전 기준, 운영 과정의 감독 의무, 사고 발생 시의 명확한 책임 분담 체계를 사회적으로 합의해야 한다. 인공지능은 인간을 돕기 위한 도구이지 책임을 대신 지는 존재가 될 수 없다. 피지컬 AI 시대의 핵심 과제는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만큼이나 책임을 분명히 하는 일이다. 그래야만 인공지능이 신뢰받는 사회적 동반자로 자리 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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