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문화

문경 봉생정 건립 내력 밝혀줄 ‘상량문’ 확인

이민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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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애 류성룡이 먼저 알아보고 우복 정경세 권유로 정사 건립

단순한 정자 아닌 학문·예절·교유의 정사…문경 지역사 귀중한 사료로 주목

문경 봉생정 건립 내력 밝혀줄 ‘상량문’ 확인
문경 봉생정 '상량문'이 게재돼 건립 내력을 알 수 있는 ‘현주집’. 이학용 전 문경청년유도회장 소장

문경의 유서 깊은 정자 봉생정(鳳笙亭)의 건립 과정과 주변 경관, 이곳에 깃든 선현들의 정신을 구체적으로 밝혀주는 상량문이 확인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자료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문장가인 현주(玄洲) 조찬한(趙纘韓·1572~1631)의 문집 현주집(玄洲集)’ 10에 수록된 봉생정사상량문(鳳笙精舍上梁文)’이다. 한국학호남진흥원이 2019년 발행한 국역 현주집을 통해 원문과 국역문도 확인할 수 있다.

 

실제 국역본에는 봉생정사 상량문이라는 제목과 함께 조찬한이 상주목사로 있을 때 정경세, 이준 등과 봉생정에서 노닐었으며, 산수가 기이하고 아름다워 이곳에 정사를 세웠다는 설명이 실려 있다.

 

특히 이 자료는 지금까지 전해져 온 봉생정의 건립 내력을 보다 구체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문헌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문경 봉생정 '상량문'
문경 봉생정 '상량문'

상량문에 따르면 봉생정의 역사는 서애 류성룡(柳成龍·1542~1607)과 인연이 닿는다. 조찬한은 이곳을 두고 서애 류성룡이 먼저 알아보았으며, 이후 우복 정경세(鄭經世·1563~1633)가 이 터를 가리켜 알려주었다고 기록했다.

 

따라서 봉생정의 내력은 류성룡이 쉬어간 곳을 기념해 정경세와 향유들이 정자를 세웠다는 정도의 기존 설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류성룡이 먼저 이곳의 가치를 알아봄→정경세가 조찬한에게 이곳을 알려주고 권함→조찬한과 교유하던 선비들의 도움으로 정사를 건립함이라는 흐름으로 구체화할 수 있게 됐다. ‘현주집의 관련 주석 역시 조찬한이 상주목사 때 정경세·이준 등과 이곳에서 함께 노닐다 빼어난 산수를 보고 정사를 세웠다고 설명한다.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은 오늘날 봉생정으로 불리는 건물의 원래 성격이다. 상량문의 원제는 봉생정상량문이 아니라 봉생정사상량문(鳳笙精舍上梁文)’이다. 즉 처음부터 단순히 경치를 감상하는 정자(亭子)’라기보다 선비가 머물며 독서하고 학문을 닦고 벗들과 교유하는 정사(精舍)’의 성격으로 건립됐음을 보여준다. ‘현주집10에도 이 제목이 명확히 확인된다.

 

상량문에는 정사를 세우는 과정도 비교적 자세하게 담겨 있다. 조찬한은 공사가 크고 자신의 힘은 부족했으나 길일을 골라 일을 시작했고, 여러 선비와 벗들이 힘을 보태 목재와 석재를 마련했다고 적었다. 재목을 올리고 새가 날개를 펼친 듯 처마가 모습을 갖춰가는 광경을 묘사하며 정사의 완성을 기뻐했다.

12일 열린 봉생정의 역사적 전승과 누정문화 강좌에서 황만기 경국대 퇴계학연구소 교수도 이 '상량문'을 소개했다.

당시 봉생정 주변의 빼어난 풍광도 생생하다. 산봉우리를 옥으로 만든 상투와 아름다운 비녀에 비유하고, 금빛 봉우리와 절벽은 인간 세상에 펼쳐놓은 병풍처럼 표현했다. 고모산성과 어룡산, 구암을 비롯해 맑은 물과 노을, 구름과 달빛이 어우러진 모습을 통해 400여 년 전 봉생정 주변의 경관을 짐작하게 한다.

 

상량문 뒤에 붙은 육위송(六偉頌)은 봉생정사의 성격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북과 위·아래로 들보를 던지며 주변 풍경과 백성들의 삶을 노래하면서, 백성들이 관리의 횡포를 받지 않고 풍족하게 살며 집안과 마을이 화목하기를 기원했다.

 

특히 정사를 크고 화려한 저택으로 지을 필요가 없으며 관례와 혼례를 치를 장소로 쓰기에 충분하면 된다는 뜻을 담고 있어, 봉생정사가 개인의 풍류 공간을 넘어 지역 선비와 주민들이 예를 실천하고 교유하는 향촌 공동체 공간이었음을 보여준다.

12일 열린 봉생정의 역사적 전승과 누정문화 강좌에서 황만기 경국대 퇴계학연구소 교수도 이 '상량문'을 소개했다.

마지막 축원문에는 봉생정사가 지향한 선비정신이 압축돼 있다.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을 즐기고, 거문고와 비파 소리가 집 안에 가득하며 서책이 시렁마다 쌓여 세상의 공명과 벼슬을 부러워하지 않는 삶을 기원했다.

 

이에 따라 봉생정은 단순한 명승지의 정자가 아니라 서애 류성룡이 먼저 가치를 알아본 곳에 우복 정경세의 권유와 인도로 현주 조찬한을 비롯한 선비들이 뜻을 모아 세운 학문과 교유의 공간이었다는 사실이 보다 뚜렷해졌다.

 

특히 이번에 확인된 봉생정사상량문은 봉생정 건립의 인적 계보뿐 아니라 건립 과정과 목적, 주변 경관, 당시 선비들의 이상적인 향촌 사회에 대한 생각까지 담고 있어 문경 지역사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문경매일신문

이민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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