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강과 박열의 고장 문경에 ‘경성역’ 재현 논란

구한말 항일 의병을 이끈 운강 이강년 의병장, 세계적인 아나키스트 박열 열사와 가네코 후미코 여사,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킨 수많은 선조 등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애국선열의 정신이 살아 숨 쉬는 문경에서 일제강점기 ‘경성역’을 본뜬 관광시설이 조성되면서 역사 인식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문경시는 2025년부터 약 40억 원을 투입해 가은읍 왕능리 일원에 관광열차 역사(驛舍) 조성 사업을 추진했으며, 올해 4월 준공된 건물은 1925년 준공된 구 서울역(당시 경성역)의 외관을 모티브로 설계됐다.
그러나 경성역은 단순한 근대 건축물이 아니라 일제강점기 식민지 통치와 수탈의 중심 시설이었다. 당시 일본인과 고위 관리가 이용하던 귀빈실·1·2등 대합실과 조선인이 이용하던 3등 대합실을 엄격히 구분했던 공간으로, 식민지 차별 구조를 상징하는 장소라는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같은 역사성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채 관광 명소로 재현한 것은 적절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운강 이강년 의병장의 의병 정신과 박열 열사의 항일 독립운동 정신을 지역의 대표 정체성으로 계승해 온 문경에서 식민지 통치의 상징성을 지닌 건축물을 관광 콘텐츠로 활용한 것은 역사적 상징성과 지역 정체성 측면에서 신중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더욱이 논란은 역사 인식에만 그치지 않는다. 가은 관광열차 역사 조성 사업과 관광테마열차, 주변 인프라 구축 등에 약 120억 원이 투입됐지만, 관광테마열차는 개장 이후 정상적인 운영이 이뤄지지 못하면서 사업 전반의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결국 충분한 수요 분석과 운영 계획, 역사성 검토 없이 대규모 예산이 투입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가은읍의 한 시민은 “운강 이강년 의병장의 숭고한 정신이 살아 있는 가은에서 식민지 시대를 상징하는 건물을 그대로 재현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지역의 역사와 정체성을 살릴 수 있는 콘텐츠에 더 많은 관심과 예산이 투입됐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민은 “관광도 중요하지만 지역의 역사적 가치와 정체성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며 “논란이 계속되는 만큼 시설의 명칭과 활용 방식도 시민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논란은 특정 건축물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는 공공사업에서 역사적 상징성과 지역 정체성, 사업성, 운영 가능성에 대한 충분한 검토와 공론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문경시는 이번 논란을 계기로 사업 추진 과정과 의사결정 절차를 객관적으로 점검하고, 역사 전문가와 시민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 향후 활용 방안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사업 추진 과정 전반에 대한 책임 있는 평가와 개선책을 마련함으로써 시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할 것이다.
문경매일신문
